최근 우리의 씀씀이는 불과 5년 전인 97년에 환란을 맞았던 나라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헤퍼졌다. 너도 나도 해외여행 한두 번 쯤은 다녀와야 하고 대도시의 웬만한 신혼부부들에게 승용차는 필수 구입품이 되다시피 했다. 고급 양주 및 세계유명 브랜드 상품이 가장 잘 팔리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 등 과소비의 예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분수 모르고 써대는 풍조는 계층 구분 없이 만연돼, 기름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배기량 3천㏄ 이상 대형 승용차 판매가 급증하는 추세가 됐고 신용카드 남용으로 인한 청소년 신용불량자 양산이 이미 사회문제화했다.
이런 풍조의 만연은 당연히 각 계층 상호간의 과소비 상승작용을 최우선적인 원인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지속돼온 경제부처 당국자들의 근거 없는 낙관론도 주범 중의 하나로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경기의 장기침체, 미국의 대 이라크전, 일본 경기 침체의 장기화 등을 보면서 정부가 내년 경기에 대해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은 최근에야 소비가 줄어드는 것만 봐도 국민이 아직까지 정부의 말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수출 회복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소비 위축으로 인한 저성장이 걱정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는 적지 않은 가계의 파산과 신용불량자 양산, 부동산 거품이 빠질 때의 혼란 등을 더 걱정해야 할 때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가계의 건실화를 적극 유도해야 할 때다. 재정이 제 아무리 튼튼하고 기업활동이 활발해져도 가계가 흔들리게 되면 나라 경제의 기초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