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경남 합천군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크게 훼손돼 있다니 걱정이다. 해인사가 보존상태를 자체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낸 바에 따르면 장경각 법보전과 수다라전의 대장경판 보관대인 남면판가(신판가)에 보관중인 대장경판 5천여장 가운데 449장이 나비굽음현상이나 비틀림.길이굽음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부 경판의 경우 옻칠이 벗겨지고 있는데 이는 나무의 부식을 의미하며 다른 경판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500년 풍상을 잘 견뎌온 팔만대장경을 이제 우리 대에 와서 이렇게 훼손해도 되는 것인가.

 해인사측은 신판가가 건물의 남쪽에 있어 경판이 햇빛에 직접 노출되고 있는데다 건물 구조상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는 점을 경판훼손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원래 팔만대장경을 보존하는 대장경판전은 앞뒤벽에 서로 다른 크기의 붙박이 환기창을 만들어 바람이 들어와 한바퀴 돌아나가게 함으로써 자연의 변화에 맞춰 온.습도를 조절, 지금까지 완벽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1972년 장경각내 동사간고와 서사간고를 정리하면서 쏟아져 나온 경판과 법보전 및 수다라전의 중앙판가에 쌓인 경판을 처리한다면서 신판가를 설치해 이같은 대장경판전의 자연 채광 및 통풍 공간을 없앴다니 우리의 문화재 관리 수준에 다시한번 기가 막힐 따름이다.

 팔만대장경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한국 문화의 진가를 세계가 인정했다는 것이지만 이와함께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계승할 책무도 우리 국민에게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대장경이라는 팔만대장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훼손했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팔만대장경이 지금까지 온존할 수 있었던 것은 경판 보관기능을 최대한 살리도록 지어진 대장경판전의 건축구조 덕인데 채광과 통풍을 위해 남겨두었던 공간에 신판가를 설치했으니 대장경이 무사할 리 없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인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거나 파괴되면 복원하기가 힘들므로 과감하게 관련 예산을 늘리고 인력을 확충해 보호.관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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