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눈여겨 보아야할 변화는 미국이 대화의 전제 조건을 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래에는 북한핵의 가시적인 포기를 요구했으나 이제는 핵포기 의사의 선언만으로도 대화의 시작이 가능하다는 선으로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으로서는 이 변화의 의미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처럼 핵계획 추진 여부에 관한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려는 전략을 수정해, 핵이 있다면 포기하고 없다면 사찰로 결백을 입증하겠다는 선언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물론 대화 자체가 문제 해결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양측의 입장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중재노력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중재 노력이 성과를 본 흔적은 그다지 뚜렸하지 않다. 미국은 대화는 하지만 보상이나 대가는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협상 없는 대화’ 정책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있다. 또 부시 대통령이 최근 하루가 멀다 않고 거듭 거듭,북한에 대한 무력 공격 의사가 없음을 강조하면서도 이 약속을 문서로 옮기는 일이 왜 어려운지,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있다. 우리가 뒤로 주춤거리거나, 미국이 이에 냉담하거나 두 경우모두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황 악화의 위험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한반도 위기의 최대 피해자가 될 위험이 있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또 주도적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미국과 북한이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 정부의 피할 수 없는 임무다. 우리측 해법의 타당성과 현실성이 국제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