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에 불만을 품은 의사가 환자로 치료한 고위 공직자들의 숨기고 싶은 병을 공개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또 사건 의뢰인과 갈등을 빚은 변호사가 의뢰인의 약점을 공개하는 일, 심지어 신부가 신도의 고백성사 내용을 밖에 알리는 일 등이 벌어진다면 그런 사회가 온전하게 지탱될 수 있을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직업윤리는 지금 매우 위험한 수위까지 떨어져있다.

 공인중개사협회가 이달말까지 고위공직자의 투기사례를 조사해 공개하겠다며 정부에 으름장을 놓고 있다. 고객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행위가 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닌지,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를 떠나 이 협회가 그런 결의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의 무너지는 직업윤리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같다. 투기 공직자를 감싸자는 게 아니다. 부동산 투기 열풍에 휩쓸려 망국병을 키우는 데 일조한 공직자가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물어 옷을 벗게하는 일까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절차는 사직당국의 조사나 제3자의 고발 등에 의해 진행되는 게 마땅하다. 고객의 의뢰를 받아 부동산 매매를 알선한 중개사가 스스로 이를 공개하는 것은 어떤 절박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직업인으로서 바른 처신이 못된다.

 공인중개사협회 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낮아진 직업윤리 수준이나 지나친집단 이기주의의 사례는 일일이 꼽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일반화하다시피 했다. 물론 각 경우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많은 국민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국가 기강까지 흐트러뜨릴 직업윤리의식의 퇴보나 집단이기주의의 발호는 이제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발 빠르게 치료에 나서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1차적 책임은 당연히 각 구성원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에 사회 분위기가 그런 식으로 조성돼온 데는 정부에도 큰 책임이 있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는 국가권력과 정부정책에 대한 집단적 저항과 그를 제어하지 못하는 정부의 허약한 자세에 대부분 뿌리를 두고 있다. 집단 이기주의를 사회의 한 속성으로 인정하는 전제가 가능하다면 결국 문제는 그를 적절하게 조정하지 못하는 정부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법과 원칙이 바로 설 수 있도록, 특히 정부가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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