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중의, 한시를 통한 세상 엿보기 (258)

▲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요즘 시장에는 햇옥수수가 껍질째 출하되어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과일인 살구와 자두, 복숭아에 이어 새로 등장한 곡물이 또 올해의 결실을 보여주고 있다.

細茸略似蒹葭穗(세용약사겸가수): 가는 뿔 모양이 마치 갈대 이삭과 비슷한데
硬葉元同薥黍叢(경엽원동촉서총): 딱딱한 잎은 본디 수수 떨기와 같네.
空有珠璣貯滿腹(공유주기저만복): 부질없이 속에 구슬이 가득 쌓아놓고 있으니
不堪衰髮向西風(불감쇠발향서풍): 서풍 속에서 쇠약한 털이 견디기 어렵네.

이 시는 조선 후기 학자 李學逵(이학규, 1770~1835)의 <玉薥黍(옥촉서, 옥수수)>로서 익어가는 옥수수를 보고 쓴 것이다. 뿔 모양의 옥수수자루는 갈대 이삭과 비슷한 형태이고 잎은 수수 떨기와 같다는 점, 껍질 속에는 둥근 낱알이 가득 들어 있고 가을바람이 불면 털이 마르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金正喜(김정희, 1786~1856)는 <題村舍壁(제촌사벽, 시골집의 벽에 짓다)>에서 “낙엽 진 버들 한 그루와 서까래 두어 개짜리 집에, 흰 머리의 두 노부부가 쓸쓸하네. 석 자도 안 되는 개울을 벗어나지 않고, 옥수수에 부는 가을바람에 70년을 살았다네.(禿柳一株屋數椽 翁婆白髮兩蕭然 未過三尺溪邊路 玉䕽西風七十年)”라고 하여 옥수수를 재배하며 일생을 보낸 일흔 살 노부부의 삶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의 서문에는 “옥수수 밭 가운데 있는 길가의 집에서 두 늙은 영감과 할멈이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영감 나이가 얼마인지를 묻자 일흔 살이라고 하였다. 서울에 간 적이 있느냐고 하니 한 번도 관아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하고, 무얼 먹고 사느냐고 하니 옥수수를 먹는다고 하였다. 나는 남북으로 떠다니며 비바람에 휘날리던 신세인지라 노인을 보니 나도 모르게 茫然自失(망연자실)하였다.”라는 설명이 있어서 전후 사정을 알 수 있다.
얼마나 순후하고 소박하게 사는 늙은 농부 내외인가? 世波(세파)를 모르고 사는 이 부부의 생활 배경에는 옥수수가 있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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