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중의, 한시를 통한 세상 엿보기 (265)

▲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예전 서당에서는 漢字(한자)를 익히는 學童(학동)들이 심심풀이로 破字(파자) 놀이를 즐겼다. 예컨대 이웃집 처녀를 짝사랑하던 총각이 ‘二糸間言下心(이멱간언하심, 두 개의 糸 자 사이에는 言 자, 아래에는 心 자)’이라고 써 보냈더니 그것이 ‘戀(연, 그리워하다)’ 자임을 看破(간파)한 처녀가 답장에 ‘籍(적)’ 자를 써 보냈다고 하자. 이 글자는 그 成分(성분)을 분해하면 ‘竹+耒(來의 속자)+昔(卄+一+日, 夕과 동음)’으로 나누어지게 됨으로써 그것을 풀이하면 ‘21일 저녁에 대나무 밭으로 오라’는 의미가 된다는 것과 같은 유형의 글자 풀이이다.
이 놀이는 참여자에게 재미뿐 아니라 풀이 과정을 통한 한자의 구조 파악에도 일정한 도움을 주었으니, 파자 놀이는 가장 기초 段階(단계)의 謎言(미언, 수수께끼) 풀이라고 할 만하다. 글자 풀이에서 한 걸음 前進(전진)하여 의미 풀이로 나아가면 거기에는 조금 더 함축적 의미를 지닌다.

有意雙胸合(유의쌍흉합): 뜻이 있어 양 가슴을 합치고
多情兩股開(다정양고개): 정이 많아 두 넓적다리를 벌리고 있네.
動搖於我在(동요어아재): 움직임과 흔듦은 나에게 있건만
深淺任君裁(심천임군재): 깊고 얕음은 그대에게 달려 있네.

이 시는 李睟光(이수광, 1563~1628)의 󰡔芝峰類說(지봉유설)󰡕에 실린 것으로 어느 부인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시에 제목을 붙이라면 무엇이라 할 것인가? 그 답은 <剪刀(전도), 또는 鋏(협, 가위)>이다. 이수광이 “시어가 교묘하지만 너무 외설스럽다.(詩巧而太褻)”고 평가한 것으로 보아 그도 이 시가 내포한 重義性(중의성)을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성장한 사람은 人間事(인간사)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하게 된다. 김삿갓이 방랑길에, 멀건 죽 한 그릇을 내놓고 얼굴을 못 드는 시골의 순박한 부부에게 “주인은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나는 물에 거꾸로 비쳐 오는 청산을 사랑한다오.(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하며 보여준 능청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 것이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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