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로 접어들자, “가을 타는 것 같다”거나 “우울하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괜한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계절성 우울증에 빠진 상황이라면 좀 더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 가을에는 이유 없이 우울한 느낌이 들거나 피로하고, 초조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증상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하다면, ‘가을 우울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일조량 줄고 기온 낮아지는 가을 되면
뇌분비 화학물질·호르몬 분비 변화로
만성피로·초조감 동반되는 우울증 유발
햇볕 자주 쬐고 가벼운 산책 도움
약물치료땐 보름이상 꾸준히 복용
섣불리 중단하면 치료 더 어려워져

◇일조량 적어지는 가을, 우울증환자 급증

‘가을 우울증’은 주로 가을에 시작해 겨울까지 계속되며,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전문가들은 가을에 일조량이 줄고 기온이 낮아져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 물질이나 호르몬 분비가 변해 우울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로 만성피로, 집중력 저하, 긴장, 초조감 등이 동반된다.

▲ 문석호 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가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을 상담하고 있다.
문석호 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우울증은 일종의 뇌질환이다. 심리적인 요인도 작용을 하지만 유전적으로도 나타날 수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심각한 상실감을 경험했을 때, 술을 많이 마시거나 특정 약물을 복용했을 때, 그리고 갑상선질환이나 췌장암등 특정한 신체질환에 동반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우울증은 생물학적, 심리적, 환경적 요인들이 복학접으로 관련돼 발병한다.

특히 문석호 전문의는 “우울증 환자들의 뇌에서는 생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멜라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인간의 성행동, 수면 그리고 기분 등이 조절되며, 이 물질은 여러 가지 환경의 영향을 받아 분비되지만 그중 햇 빛이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일조량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가을에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절간 일조량 차이가 ‘감정’ 관련 화학물질의 체내 분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가을에 들어서면, 낮시간은 점점 짧아진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 분비가 줄고, 숙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분비는 증가한다. 일조량이 적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 지역에 계절성 우울증 환자가 많은 것도 이같은 이유다.

특히 뇌에서 체온 조절을 관장하는 시상하부의 기능이 약한 사람이라면 계절성 우울증에 더 쉽게 빠진다. 시상하부가 온도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해 엉뚱한 명령을 내리면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분비가 불규칙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볕 쬐고, 산책·수영 등 유산소 운동 도움

가을 우울증을 잠깐 스쳐 지나가는 기분 변화 정도로만 생각하고 방치하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우울증에 깊이 빠져 장기간 지속될 경우 암이나 치매 발병 확률도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계절성 우울증 증상이 환자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인 만큼 생활 속에서 작은 노력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문석호 전문의는 “가을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창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등 햇빛을 자주 접하는 것이 좋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조깅, 수영, 자전거타기 등의 유산소 운동과 더운 목욕, 공연관람 등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취미활동도 좋다. 또 달거나 카페인이 많은 음식은 피하고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한 연구에 따르면 수면장애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수면이 부족하면 피로를 유발하고, 집중력과 기억력을 떨어뜨려 우울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절한 숙면을 취한다면 우울증을 어느정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유심히 바라보아야”

이런 방법으로도 극복되지 않으면 전문의로부터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문석호 전문의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질 우려가 있다면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찾아주는 약물 치료가 필수적”이라면서 “다른 항정신성 약품들과는 달리 항우울제는 습관성이나 정신이 멍해지는 증상도 거의 없다. 약물치료는 15일 이상 지속적으로 투약해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효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고 섣불리 약을 중단하면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 또한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의사의 중단지시가 있을 때까지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마음의 고통을 극복하는 ‘마음치료’와 ‘미술치료’도 도움이 된다.

문석호 전문의는 “마음을 보듬는 여러 노력들 중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 생각들을 유심히 바라보아야 한다. 또 인간의 감정은 생각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조정될 수도 있기에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는 스스로 감정을 순화하면서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석현주기자 hyunju021@ksilbo.co.kr

도움말=문석호 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