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소설 <반구대>를 쓰기까지

인류 최초의 포경 기록이자 연대까지 측정 가능한 세계적 문화유산
울산 물 문제도 중요하지만 반구대 암각화 보존은 화급을 다투는 일
소설 ‘반구대’ 대중의 무관심을 관심·존중으로 이끄는데 일조 기대

반구대암각화는 글로벌시대에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우리 울산의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거기엔 6000년 전 문명의 여명기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우리 문화의 원형(Archetype)을 짚어볼 수 있는 대서사시인 것이다. 파리 국립 자연사박물관장인 다니엘 로비노 박사는 반구대암각화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이유로 인류 최초의 포경에 관한 기록일 뿐 아니라, 그 연대까지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그만큼 명확하고 분명한 고래사냥 장면은 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다.  

▲ 소설 <반구대>의 남녀 주인공들인 일명 그리매, 꽃다지 바위 얼굴. 반구대암각화를 정면으로 두고 1시 방향, 약 5m 거리에 위치해 있다. 김건곤 향토사학자 제공

필자는 여기에 하나 더 보태고 싶다. 보존의 경위에 관해서다. 문화재나 유적지가 보호되는 이유는 크게 둘, 외경과 존중이다. 훼손할 시 받게 되는 불이익 때문에 두려워서 보존하는 경우와 스스로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기에 보존하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마야의 암벽화라면, 얼핏 반구대암각화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터부시하지 않는 곳에,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있음에도 6000년 동안, 최소한 사연댐이 준공되기 전까지는 잘 보존되어 왔기 때문이다.

근데, 꼭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선조들의 예술작품을 존중해서 였다면 두 말할 필요 없이 존경받을 처사겠지만, 혹시 무지나, 무시, 무관심 때문에 억지춘향 격으로 보존된 건 아닐까? 만약 무지해서 였다면 즉, 그 가치를 몰랐거나 눈길을 끌지 않아 스쳐지나가다 보니 결과적으로 보존이 되었다면, 그래도 동정은 살 수가 있다. 근데, 무시, 무관심으로 방기된 상태에서 보존된 것이라면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어쨌든 백일하에 노출된 상태에서 6000년 간 보존되어 왔다는 것만은 가히 세계 8대 불가사의에 해당될만 하다.  

▲ 소설 <반구대>에 등장하는 일명 범굴. 한실마을 쪽 산 중턱에 있다. 김건곤 향토사학자 제공

‘겨울연가’ 촬영지로 유명한 춘천 남이섬에는 국보 못지않은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이 춘천의 시민소득을 10퍼센트 이상 올려놓았다고 한다. 르네상스시대의 유화도 아니고 선사의 암각화는 더욱 아닌, 초현대판 레이저프린터로 뽑아낸 배우 배용준이 담긴 포스트 한 장이다. 지금 이 그림 한 장으로 춘천은 일본인 관광객들에다, 13억 인구의 중국인 관광객들까지 더해져 요식업·숙박업·운수업 등 서비스사업 전반에 걸쳐 호황을 누리고 있다. 혹자는 하기 좋은 말로 반구대암각화를 경주 전체와도 안 바꾼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춘천시민들에게 남이섬의 배용준 포스트와 반구대암각화를 바꾸자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시민들의 암각화에 관한 이해는 일천하다.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그에 관한 자료들이 역사학·고고학·미술사학 등 분야 전문가들에 의해 작성된 것들로서, 일반인들의 접근을 쉬이 허락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들과의 호흡이 중요하다. 오감으로 그 가치를 느낄 때, 시민들 스스로 보존운동에 앞서게 된다. 오감은 실감이며, 실감은 구체적일 때 피부에 와닿는다.

2007년 5월,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를 찾아 나섰다. 망원경으로 강 저편 절벽을 봤지만 훼손이 심한 탓에 그림들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기를 몇 차례, 망원경의 초점을 위 아래로 맞추다 보니 멧돼지와 고래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머지 그림들을 식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후 기회가 되면 그곳을 찾았다. 비가 세차게 내린 뒤 맑은 한여름 어느 날 오후였다. 암벽 우측 하단부의 인면상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10여년 전 중국 상해 임시정부 청사 안에서 김구·윤봉길·안창호 선생들의 유품을 보고 느꼈던 일종의 기(氣) 같은 것이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것들이 잠 못 이루게 만들었다. 관련 자료들을 모았다. 생각보다 참고할 만한 자료는 많지 않았으며, 있는 것마저 암각화의 제작 연대, 새김 방법, 보존 대책 등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시 반구대를 찾았다. 누가?부터 시작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날은 인면상이 망원경에 출몰치 않았으며, 쉽게 보이던 멧돼지까지 흐릿흐릿 인색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음은 오히려 편했다. 곧장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소설의 첫 줄은 그렇게 써졌다.

소설을 쓰는 일은 어찌 보면 된장 담그는 일에 비유될 수 있다. 온갖 요리에 쓰이는 된장은 국을 끓이거나, 나물을 무쳐 먹거나, 가지그라탕 등을 만드는 등 그 쓰임새가 긴요하다. 육하원칙과 친하지 않은 픽션에, 그것도 역사가 아닌 선사시대 이야기를 주절주절 널어놓은 소설 <반구대>, 억지라면 억지다. 하지만 암각화에 대한 무관심을 관심으로, 무시 및 무지를 존중으로 이끌어가는데 소량이나마 일조할 수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연극,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 보다 파급력과 전파력이 큰 2차, 3차 예술작품들이 그 소설을 기조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 구광렬 시인·소설가·울산대 교수

물, 중요하다. 하지만 일에는 중요한 것과 급한 것이 있다. 아무리 중요해도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 급하다는 건 일실할 수 있다는 뜻이고, 일실한다는 건 회복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울산의 물문제가 중요한 일이라면, 반구대암각화의 보존은 화급을 다투는 일이다. 물이 모자란다면 절수운동부터 펼쳐보자. 변기통에 벽돌 하나씩만 넣어도, 하루에 백만 리터 가까이 절수할 수가 있다.

암각화는 한번 훼손 되면 회복 불가능이다. 존중에 의해서거나, 무지, 무시, 무관심에 의해서거나, 어쨌든 우리의 보물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훼손할 시 생명을 잃는다는 등, 터부시되는 마야의 암벽화에 비하면 외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지금부터는 그 외경에 의한 보존마저 필요한 시점이다. 반구대암각화에 관한 무시, 무관심은 후손들에게 원(怨)을 품게 할 것이다.

구광렬 시인·소설가·울산대 교수

(반구대포럼·울산대공공정책硏 재능기부 프로젝트)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