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차바의 피해복구가 상당히 이뤄졌으나 후유증은 만만찮다. 그 원인은 아무래도 재해대응의 안일함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20여년간 자연재해가 없었던 때문이겠으나 하천과 산야 등 자연환경의 치수기능을 등한시하고 토지이용의 극대화와 수변공간의 활용에 치중한 것이 이번 수해를 키운 원인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수해 복구와 피해 보상 못지 않게 장기적 안목에서 치수기능 강화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자치단체가 자체 집계한 결과를 보면 북구(12일 낮 12시 기준)는 1967건에 243억4800만원, 중구(10일 기준)는 1333건에 495억1000만원, 울주군(12일 기준)은 790억원의 피해가 났다. 피해규모가 엄청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하기 다행이다. 지난 5일 차바가 30여분만 더 울산에 머물렀더라면 그 피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상대는 이날 오후 2시까지 강수량이 266㎜라고 했다. 하루 강수량으로 보면 417㎜였던 1991년 8월23일 태풍 글래디스 보다 적은 양이다. 그럼에도 피해가 더 컸던 것은 분명 지난 25년동안 치수관리에 소홀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울산은 그동안 하천 정비에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하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치수에 중점을 둔 비용은 거의 없었다. 이용편의에 초점을 맞추어 크고 작은 하천을 복개(覆蓋)하거나 개복(開腹)해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근래 들어서는 치수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태화강 둔치에 많은 나무와 꽃을 심기도 하고, 아스콘 또는 인조잔디로 포장을 해서 주차장과 물놀이장, 산책·자전거길, 운동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번 태풍 피해를 집계하는 과정에서도 이같은 투자의 무모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 관련 법상 하천 부지에 설치된 태화강 십리대숲 축구장, 야외 물놀이장, 둔치 주차장 등이 정부의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 바로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는 시설이라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울산시가 수년에 걸쳐 투자한 수백억원의 예산이 몽땅 물속에 떠내려 가버린 것이다. 그대로 복구하려면 오롯이 울산시의 예산을 다시 들여야 한다.

따라서 둔치이용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시설로 당장의 즐거움에 취해서 위험을 간과하는 우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된다. 축구장이든 물놀이장이든 물의 흐름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해야 한다. 당장에 불편이 있더라도 완전한 시설이 아니라 임시시설로 하도록 규정을 만들어서 공연한 예산낭비도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차바’ 보다 더 큰 태풍이 오지말란 법도 없지 않는가.

하천 뿐 아니다. 298만㎡의 산지를 깎아 혁신도시를 조성하면서 배수 등에 있어 이웃한 마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안일하게 토목공사를 했던 것도 원인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하천 상류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도 하류에 있는 아파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태풍 ‘차바’가 들려준 자연의 경고를 허투로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알다시피 안전정책은 가장 보수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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