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부의장을 지낸 5선의 정갑윤(울산 중구) 의원이 탈당을 선언했다. 새누리당 중구당협 신년하례식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남겠다”고 밝혔다. 그는 친박계 핵심이지만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탈당을 촉구한 ‘인적 청산’의 대상으로 꼽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 의원은 이날 ‘불쏘시개’를 자처한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친박으로서 어떤 처신을 해야 할 시점인지를 제대로 판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마침 이날 서청원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무법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벌이며 당을 파괴하고 있는 인명진 위원장이 당을 떠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과 대조를 보인다. 정 의원은 앞서 서 의원, 인 위원장을 차례로 만나 원만한 협의를 요청했으나 두 사람 모두 요지부동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불쏘시개는 불을 때거나 피울 적에 불이 쉽게 옮겨 붙게 하기 위해 먼저 태우는 물건이다. 그래서 불쏘시개가 스스로 타는 것에 그쳐서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정의원은 이날 “지금은 새누리당이 죽어야 보수가 살고 대한민국이 산다”면서 책임지지 않는 지도부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의 탈당이 얼마만한 큰불을 일으킬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친박계 의원들의 탈당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될 것은 분명하다. 이날 정우택 원내대표와 박맹우(울산 남구을)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비롯한 20여명은 거취를 인 위원장에게 위임했다.

정 의원은 새누리당을 탈당한다고 해서 개혁보수신당으로 가는 등의 행보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그가 바라는 로드맵은 헌재의 탄핵기각 결정에 이어 ‘4월 퇴진, 6월 대선’이라는 애초의 당론이 이뤄지는 것이다.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지켜주는 것”으로 친박의 도리를 다하고 싶은 그의 마음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만시지탄이지만 정 의원이 중진으로서 책임을 지기 위해 탈당을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촛불민심과는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촛불민심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박대통령이 속속 터져나오는 최순실 비리로부터 완전 무관하다고 하기는 어려워지면서 ‘명예로운 퇴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그가 대통령을 지키기 보다는 국민을 지키고, 지역구민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정치인으로 새로운 길을 걸어가기를 기대한다. 울산에서 처음으로 배출한 5선의원이자 국회 부의장을 지낸 중량감이 있는 정치인으로서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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