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푸른 작업복이 헌옷수거함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나뒹굴고 있다. 수십년간 세계 1위 조선업체였던 현대중공업의 현주소다. 본보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동구 방어동 일대 원룸촌에 있는 한 헌옷수거함 옆에는 60여벌의 현대중공업 작업복과 작업화가 버려져 있었다. 현대중공업 물량팀으로 울산에 와서 한동안 돈벌이를 했던 원룸 거주자들이 일거리가 떨어지자 울산을 떠나면서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헌옷수거함에 넣으려고 했으나 더 이상 넣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헌옷수거함에는 이미 ‘작업복 버리지 마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울산에서는 신분증이나 다름없던 작업복이 아니던가. 헌옷수거함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나뒹굴고 있는 작업복들은 현대중공업의 추락한 자존심을 말해주는 한편 주거정책의 한계와 지역경제의 미래를 나타내는 가늠자이기도 하다.

버려진 작업복이지만 예사롭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당장에 동구 방어동 일대 원룸촌의 비상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0년을 전후해 3~4년간 현대중공업이 저가수주 물량 때문에 인력을 집중 투입하자 외부 근로자들이 일시적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우후죽순 원룸이 들어섰다. 그런데 조선경기가 침체된 2012년 이후 공실률이 늘어나기 시작, 지금은 공실률이 40% 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룸이 급증할 때부터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오늘날 공실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자치단체가 시장경제나 사유재산에 간섭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으로 예고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선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공급 중심인 ‘주택조례’를 따르고 있는 울산시의 주거정책에 변화가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부산시가 ‘주거기본조례’를 제정해 주거취약계층 등 주거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오래전 김정섭 유니스트 도시환경공학부 교수는 “조선업 경기침체로 동구 원룸촌을 중심으로 빈집들이 급증하고 있다는데 이에 대한 울산시의 조사와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며 “경제위기 때에는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경제정책과 더불어 주거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주택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시지탄이지만 늘어나는 빈집에 대한 현황 파악과 대책 수립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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