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도쿄 모리(森)미술관

▲ 모리미술관 출입구. ‘모리’의 이니셜 ‘M’자 형태로 디자인됐다.

최근 도쿄를 여행하면서
모리미술관을 처음 방문했다.

애초 일정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한나절 자유시간이 갑자기 주어지자

도시재생 성공사례인
롯폰기(六本木)를
짧게라도 둘러보기로 했다.

롯폰기는 서울 부산 창원은 물론
아시아권 여러 도시에서
도시재건의 벤치마킹 탐방지로
유명한 터였다.

그 속에는 전통적인 형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새로운 미술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롯폰기힐즈의 중심 모리타워에 위치
52~53층…천상에 가장 가까운 미술관
도쿄 시내가 한눈에 ‘초고층 전망대’
미술관 입장권 연계해 패키지 마케팅

수백여점의 현대미술 컬렉션 갖춰
상설컬렉션 없는 단점 보완 차원
2005년부터 미술품 사들이기 시작
거미조형물 ‘마망’ 롯폰기 아이콘으로

방송의 힘, 마케팅으로 활용
아사히TV 방송에 단골 등장하자
직장인들 퇴근후 찾는 현상 반복
미술관 운영시간 10시까지 늦춰

도쿄 롯폰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음식점과 환락가를 이루며 도쿄의 밤문화를 주도했다. 거리는 번화했으나 난개발이 문제였다. 소방차 한 대도 들어설 수 없을만큼 복잡했다. 1980년대 들면서 버블경제 붕괴와 불황까지 겹쳐지자 도시재생 필요성이 제기됐고,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인 모리빌딩이 사업에 참여했다.

낙후된 도심을 지금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앞서 14년은 400여 명 지주를 설득했고, 나머지 3년은 모리타워를 중심으로 한 초고층 빌딩을 올렸다. 모리빌딩은 롯폰기의 성공으로 세계적 관심을 모으면서 더욱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현재 도쿄 중심부에만 110여 개의 빌딩을 갖고 있으며 한 해 임대수익은 2조7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 모리타워 정원에는 대형청동거미 ‘마망’이 세워져 있다. 2010년 타계한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이다.

2003년 탄생한 롯폰기힐즈는 여러 개의 건물이 모인 주상복합단지다. 그 자체가 하나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만5500㎡의 나지막한 언덕에는 랜드마크인 모리타워(지하 6층, 지상 54층 ·총238m)를 비롯해 크고 작은 8개의 건물이 사이좋게 서 있다. 건물은 붙어있지않고 듬성듬성 떨어져 있다. 그 사이에 정원과 광장을 조성해 거대 빌딩군이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모리미술관은 롯폰기힐스의 중심 모리타워의 로열층(52~53층)에 자리한다. ‘천상에 가장 가까운 미술관’이라는 별칭이 붙여진 이유다. 다만 초고층 빌딩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미술관’하면 떠오르게 마련인 건축적 아우라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임대료가 비싼 곳에 있기 때문에 고정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또 하나 더 놀라운 점은 미술관 내 상설 전시관이 없다는 것이다. 루브르의 ‘모나리자’, 오르세의 ‘만종’, 뉴욕현대미술관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전세계 유명 미술관에는 그 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스타’ 미술품이 있게 마련인데 모리미술관에는 그 같은 최고의 걸작이 없다는 이야기다.

▲ 모리미술관에서는 세계적 현대미술 전시와 함께 영화 속 히어로 캐릭터를 보여주는 전시부스도 운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미술관은 개관 이래 연중 최다 관객 수 기록을 갱신하며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53층 본 전시장은 평면회화를 비롯해 설치예술, 비디오아트 등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한다면, 52층에서는 디자인이나 패션, 건축 등 좀더 확장된 영역에서의 기획전을 선보인다. 역량있는 큐레이터들이 해마다 국내외 작가들을 초청해 글로벌 미술관의 위상을 과시한다. 규모와 스케일은 웬만한 비엔날레와 맞먹을 만큼 퀄리티가 보장된다. 한국작가로는 ‘구름작가’로 알려진 광주 출신 강운이 미술관의 로비를 장식했고 서도호, 이불 등도 초대됐다. 모 기업이 탄탄한 후원으로 뒷받침을 해 줬기에 가능했다.

▲ 모리미술관에서 바라 본 도쿄 시내 전경. 저 멀리 보이는 붉은 색 철탑이 1958년 세워진 도쿄타워(333m)다. 모리미술관은 도쿄 롯본기힐즈 모리타워 53층에 자리한다. 그 아래 52층은 탁 트인 조망권의 전망대로 꾸며져 있다.

모리미술관의 대표 기획전 목록에는 2015년 가을부터 2016년 봄까지 진행된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규모 개인전이 들어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현대미술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모리미술관에서 세계 회화 역사상 최대 규모로 부르기에 손색없는 대작을 선보였다. 길이 100m, 높이 3m가 넘는 화폭에 요괴 같은 기괴한 인물과 상상 속 동물들을 그려넣어 ‘오백나한도’라는 제목의 현대적 불화를 완성했다.

▲ 모리미술관에서 바라 본 도쿄 시내 전경. 저 멀리 보이는 붉은 색 철탑이 1958년 세워진 도쿄타워(333m)다. 모리미술관은 도쿄 롯본기힐즈 모리타워 53층에 자리한다. 그 아래 52층은 탁 트인 조망권의 전망대로 꾸며져 있다.

개관 이후 기획전으로 일관했던 미술관 노선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상설 컬렉션이 없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2005년 부터는 미술품을 사들여 소장품 목록을 늘려나가고 있다. 수준높은 기획전만으로 전시장을 채우고 관람객들을 끌어들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에 따라 모 기업의 지원으로 매년 수십 여점의 작품을 구입하고 있으며 현재는 수백여 점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모리타워 앞의 거대한 거미 조형물 ‘마망’은 미술관의 소장품 중 가장 큰 스케일을 자랑한다. 2010년 타계한, 세계적인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으로 해마다 4000만명이 다녀간다는 롯폰기힐스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모리미술관이 전세계 미술인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관람객 창출을 위한 운영의 묘에서 출발한다. 미술관이 입주한 모리타워 주변에는 일본의 주요 방송사 중 하나인 아사히TV 본사가 있다. 미술관은 이 아사히TV의 방송프로그램 배경으로 미술관이 자주 비춰지도록 장소를 자주 빌려줬다. 방송의 힘을 마케팅으로 활용한 것이다. 아사히TV의 아침 프로그램 진행자가 모리 미술관의 작품들을 배경으로 두고 문화계 소식을 전한다거나, 캐스터가 이슬이 촉촉히 내려앉은 모리 정원에서 날씨 예고를 전하는 방식이다. 출근 전 잠시 켜놓은 TV에서 그 모습을 본 회사원들이 그날 저녁 어김없이 모리 미술관을 찾는 현상이 반복됐다.

그렇게 몰려드는 직장인을 위해 미술관은 누구라도 늦은 밤까지 여유롭게 미술품을 감상하도록 미술관 개장시간을 오후 10시까지 늦췄다. 이 곳이 가장 붐비는 시간은 오후 7시. 퇴근한 직장인들이 하루의 스트레스를 떨쳐내기 위해, 혹은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예술의 향기 가득한 미술관을 찾아온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밤미술관’을 표방하는 공간이 많지만, 15년 전 모리미술관 개관 당시만 하더라도 이는 대단히 파격적인 운영 방법으로 소개됐다.

▲ 홍영진 기자 경상일보 문화부장

도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초고층 전망대(52층)와 미술관 입장권을 연계한 패키지 마케팅도 무시할 수 없다. 한 해 수백만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는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술관으로 관광객을 인도하는 택시 운전자와 호텔 종사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모리미술관을 중심으로 국립신미술관, 산토리 미술관을 하나로 엮고 세 곳을 할인된 가격으로 둘러보게하는 ‘아트 트라이앵글’(art triangle) 패키지도 유명하다.

모리미술관은 도심 속 미술관이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상과 예술의 공존이 도시민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2020년 울산의 원도심에 들어 설 울산시립미술관이 시민들을 위해 가장 주안점을 둬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본보 문화부장·참조= <미술관 옆 MBA> <도쿄 미술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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