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장 직급 하향·기수 파괴…대대적 인적 청산 신호탄
6∼7월 검찰 인사 안갯속…검사장급 중심으로 ‘주류’ 대변화 전망

▲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걸린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돈 봉투 만찬 파문'에 연루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한 감찰 지시와 좌천 인사,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의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등 청와대의 파격 인사 단행은 본격적인 검찰개혁을 위한 인사 태풍을 예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윤석열(57·사법연수원 23기)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한 것은 검찰 개혁을 위한 인적 청산 작업을 본격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전임 중앙지검장이 연수원 18기인 이영렬(59) 고검장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려 다섯 기수가 내려간, 전례가 드문 파격 인사다.

새 정부 들어 검찰 수뇌부의 잇따른 사의 표명으로 생긴 업무 공백을 해소하려는 측면 외에 앞으로 진행할 검찰 개혁을 힘있게 밀어붙이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소속 검사 200명이 넘는 검찰 최대 수사 조직이자 최고의 수사 요원들이 포진한 서울중앙지검 수장은 법무부 검찰국장과 함께 검찰 내 ‘빅2’의 요직으로 꼽힌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이후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고검장급 고위 간부가 임명되는 게 관례였다. 이 때문에 인사권을 틀어쥔 청와대나 검찰총장의 눈치를 보거나 외압에 쉽게 노출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차장검사급인 윤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며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 배경에는 이런 폐단의 고리를 끊어내려는 의지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인 윤 검사는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당시 조영곤(59·16기) 서울지검장 등 검찰 지휘부와 갈등을 빚으며 좌천됐다.

당시 검찰 안팎에선 정권의 정통성을 흔드는 사건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다가 눈 밖에 났다는 설이 파다했다.

이후 3∼4번의 좌천성 인사를 감내하며 ‘절치부심’하다 작년 ‘최순실 국정농단’ 규명을 위한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석검사로 수사 전면에 나서서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 하는 등 ‘당대의 칼잡이’로 명예 회복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인선을 ‘국정농단’ 의혹의 재수사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조국 민정수석 등 참모진과의 오찬 자리에서 “특검에서 검찰로 넘어간 국정농단 사건을 검찰에서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사실상 재수사 여지를 남겼는데 윤 지검장에게 그 책무를 맡긴 게 아니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19일 김이수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지명하는 발표를 한 뒤 일문일답에서 윤석열 지검장에 대해 “국정농단 사건 수사와 공소유지의 적임자”라고 밝혀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그 배경을 떠나 윤 검사의 서울지검장 임명으로 검찰 조직 내에도 거센 후폭풍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검찰 수뇌부는 사실상 공백 상태다. 법무부 장관은 작년 11월 김현웅(59·16기) 전 장관의 사퇴 이후 6개월째 공석이고 검찰총장직도 이달 15일 김수남(58·16기) 전 총장 퇴임 이후 비어있다.

여기에 ‘돈 봉투 만찬 파문’에 연루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51·20기) 법무부 검찰국장이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장관 대행 역할을 해온 이창재(52·19기) 차관과 김주현(56·18기) 대검 차장검사마저 이날 나란히 사의를 밝혀 법무부와 검찰의 지휘 체계가 사실상 ‘진공’ 상태에 빠졌다.

향후 검찰 인사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국면에 휘말린 셈이다.

앞으로 이어질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인선을 지켜봐야겠지만 현재 상황만으로도 향후 거센 물갈이 인사를 예상하는 시각이 많다.

서울지검장의 지위가 고검장급에서 검사장급으로 내려감에 따라 직급 파괴 현상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당장 서울지검 1차장검사직의 위상에 큰 변동이 예상된다. 초임 검사장이 중앙지검장을 꿰차면서 전통적으로 검사장 자리로 인식된 해당 보직의 직급 하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서울지검 1차장은 연수원 21기인 노승권(52) 검사장이다.

유력한 검사장 승진 후보였던 중앙지검 이동열(51·22기) 3차장검사와 이정회(51·23기) 2차장검사의 거취도 관심사다. 이들은 윤 신임 지검장보다 각각 연수원 기수가 위이거나 같다.

이를 기점으로 연수원 17∼22기 고검장·검사장급 인사는 물론 23기 이하 검사의 신규 검사장 승진, 여타 차장·부장검사급 인사에도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고위간부들의 대거 퇴진이나 전보를 통한 ‘주류’ 교체가 가능한 시나리오다.
박근혜 정부 ‘황태자’이자 ‘검찰 농단’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우병우(51·19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인맥으로 분류되는 이른바 ‘우병우 사단’ 검사들의 대대적인 ‘솎아내기’도 예상된다.

사의를 표명했지만 수리되지 않은 이영렬 전 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좌천 인사도 눈에 띈다. 고검장급인 이 전 지검장은 검사장급 자리인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발령나 연수원 동기인 문무일 고검장을 보좌하게 됐다. 검찰 ‘빅2’로 불리던 안 전 국장은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내려가 일하게 됐다.

검찰 내부에서는 사의까지 밝힌 두 사람에 대해 법무연수원 등으로 발령냈던 과거 사례와 달리 일선 검찰청으로 발령낸 것에 대해서도 ‘예상 밖’이라는 반응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기수와 서열 문화를 중시하는 검찰 조직 특성상 이 정도의 ’쓰나미급‘ 인사 태풍에 맞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인사 여파에 검찰은 ‘충격’과 ‘공포’에 빠진 분위기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사상 초유의 파격적 인사라는 말 외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가 사실상 검찰 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대적인 인적 쇄신 작업에 이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예고했던 개혁 작업이 속도감 있게 뒤따를 것”이라고 점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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