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는 공공병원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시절부터 국립산재병원 설립이 검토됐으나 여전히 공공의료 소외지역이다. 그 후에도 선거 때마다 산재병원 설립은 공약으로 등장했다. 드디어 2013년 7월 고용노동부는 기획재정부에 울산 산재모(母)병원 설립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하면서 첫단추를 끼웠다. 그러나 순탄치 않았다. 경제성이 낮아서 규모를 축소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4년여가 지나도록 예비타당성조사의 최종 결과가 발표되지 않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행정상의 마무리 단계에서 멈춰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도 ‘혁신형 공공병원’이라는 명칭으로 울산에 공공의료시설 건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산재모병원이라는 전 정부의 공약이 겨우 첫발을 내디디려는 시점에 혁신형 공공병원이라는 새 정부의 공약이 일정부분 겹쳐지면서 지역 내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공공의료기관 설립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충분히 조정이 가능할 것 같은데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양자택일의 문제가 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민주당 울산시당은 20일 “앞선 정부의 공약사업인 산재모병원을 백지화하고 산재 기능을 가진 대학병원급 혁신형 공공병원 건립으로 예비타당성 등을 다시 추진하도록 국정위와 중앙부처에 적극 건의했다”고 20일 밝혔다. 화들짝 놀란 것은 산재모병원에 오랫동안 공들여온 울산시 뿐 아니다. 울산광역시의사회, 울산광역시간호사회, 울산지역병원협의회는 22일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인근 진료권 대형병원들이 충분한 시점에 급성기 병상이 중심이 되는 대학병원 수준의 종합병원 건립은 그 역할에 한계가 있다”며 “혁신형 공공병원은 치료보다는 연구개발 중심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지금은 각자의 의견개진 보다는 대화를 통해 지난 4년동안 진행해온 산재모병원의 예비타당성 통과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산재모병원을 포기하고 혁신형 공공병원으로 다시 예비타당성조사를 시작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공의료시설은 경제성을 주요 기준으로 삼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또 얼마나 많은 시간·예산·행정력을 들여야 할 지 모른다. 소식통에 의하면 산재모병원의 예비타당성 결과는 겨우 설립이 가능한 정도의 점수를 얻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이 성과를 수포로 돌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이유는 없다. 차후에 새정부의 취지와 울산시의 장기비전, 의료단체들의 주장까지 포괄적으로 담아내면 될 일이다. 지역내 갈등으로 자칫 지역의료수준의 획기적 향상을 기대하는 울산시민의 바람이 물거품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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