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파리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

▲ 루브르 박물관 입구의 ‘유리 피라미드’. 건설 당시 논란이 많았지만 지금은 루브르의 유명 소장품 만큼이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루브르박물관
‘ㄷ’자로 연결된 3개의 큰 건물에
이집트 유물부터 19세기 작품 망라
모든 작품보려면 1주일은 걸려
세계서 가장 귀한 ‘모나리자’
방탄유리벽에 둘러싸여 특급경

-오르세미술관
호불호 갈리는 현대미술과 달리
빈센트 반 고흐·폴 고갱·뭉크 등
인기 많은 인상파 걸작 다수 소장
신인상파·후기인상파·사실주의 등
19C 미술흐름도 연대기별로 선보여

미술애호가에게 파리는 한번쯤 꼭 방문하고 싶은 로망의 도시다. 중세 이래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군림해 온 파리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 세계3대 미술관 가운데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 근대예술의 전당인 오르세 미술관,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품을 품고있는 퐁피두 센터, 거장들의 아틀리에를 공개한 소규모 갤러리 등 내로라 하는 미술공간이 한 도시 안에 오손도손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자리한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확연히 구분되지만 그 곳에서는 미술관도 박물관도 모두 프랑스어로 ‘뮈제’(Muse´e)라고 표기된다. 이번 회에는 그 중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을 먼저 답사해 보기로 한다.

▲ 오르세 미술관 1~2층. 옛 플랫폼을 전시장으로 리모델링 했다.

루브르 궁전에 미술관이 생긴 건 파리 혁명기인 1793년이다. 궁전의 일부를 중앙미술관으로 만든 것이 시초다. 이탈리아 그림 12점으로 출발한 왕가의 미술전시는 루이 13세에 200점, 루이 14세에는 2500점으로 늘어났고 루이 16세에 이르자 숫자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이 미술품이 일반에게 공개된 건 왕정붕괴 이후다. 여기에 나폴레옹이 가져 온 예술작품(전리품)까지 나날이 더해졌고, 이를 제대로 전시하기 위해 궁전 내부의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됐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BC 4000년 전 이집트 유물부터 그리스 로마 유물, 1848년까지의 회화와 조각품들이 전시돼 있다. 규모로 보나 컬렉션의 다양성으로 보나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ㄷ’자로 연결된 3개의 큰 건물에 3~4층에 걸쳐 구석 구석 작품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감상은 커녕 빠른 걸음으로 작품 앞을 지나쳐 가도 이 모든 작품을 보는데 1주일 정도는 걸린다. 방문객들 대부분이 빠른 걸음으로 박물관의 이 곳 저 곳을 누비게 된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럴 땐 한국어로 된 안내도를 보면서 자신이 보고 싶어했던 작품을 콕 찍어 찾아 다니는 것도 방법이다. 보물찾기처럼 어렵게 찾아 낸 작품 앞에서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이 주는 감동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느껴본다.

▲ 루브르 박물관 내 작품을 관람하는 관광객들.

루브르의 대표작,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언제부터 유명했을까.

1911년 8월. ‘모나리자’가 사라진다. 도난범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액자작업을 하던 이탈리아인 페루지아였다. 그는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나폴레옹이 훔쳤다고 생각해 고국으로 가져 갈 생각이었다. 따지고보면 모나리자는 프랑스가 거금을 주고 구매한 작품이다. 레오나르도를 사랑한 프랑수아 1세가 거금을 주고 그림을 구매, 퐁텐블루 궁전에 걸기도 했다. 나폴레옹도 한때 자신의 침실에 이 ‘모나리자’를 놔두기도 했다.

▲ 오르세 미술관 3층에서는 대형시계를 통해 외부를 볼 수 있다.

어쨌든 ‘모나리자’가 사라지자 파리는 뒤집어진다. 파리경찰은 수사의 갈피를 못잡고 유명 시인인 기염 아폴리네르와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를 조사했다. 파리 시민들의 상심이 얼마나 컸는지, ‘모나리자’가 사라지자 루브르엔 그림이 자리 한 빈 벽이라도 보자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2년 뒤 이탈리아 화가 페루지아가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이 그림을 10만달러에 팔려다가 덜미를 잡혔다. 하지만 ‘모나리자’는 곧바로 돌아오지 못했다. ‘원래는 우리 것이었는데…’라는 여론때문에 이탈리아에서 1년여 간 순회전을 마친 뒤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렇게 다시 찾은 ‘모나리자’는 현재 방탄유리벽에 둘러싸여 먼 발치에서만 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귀한 작품이 됐다.

드넓은 루브르의 전시공간 중 모나리자의 위치는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대도시의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처럼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시루 속 콩나물처럼 다닥다닥 붙어 서 있다. 두 팔을 높이 들고 자신의 스마트 폰에 모나리자의 미소를 담으려는 포즈 또한 똑같다.

▲ 파리 센 강 건너 오르세 미술관 쪽에서 바라 본 루브르 박물관. 파리 센 강 위로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다.

오르세 미술관은 파리 센 강을 사이에 두고 루브르와 마주보는 자리에 있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리모델링 한 곳이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프랑스 파리 한 가운데 세워졌던 오르세 역은 호텔, 레스토랑 등의 부대 시설을 포함한 초호화 기차역이었다. 이후 철도가 빠르게 발전하고, 새로 개발된 열차와 플랫폼의 규격이 맞지 않게 되면서 1939년부터는 장거리 열차의 운행이 중지됐다. 점차 쇠퇴하던 오르세역은 1973년 호텔마저 영업을 종료하면서 결국 문을 닫았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오르세역은 루브르 박물관 책임자들 사이에서 미술관으로 개축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재생의 기회를 얻었다. 1978년 오르세 미술관 건립 준비위원회가 결성됐고, 1979년 건축안 공모전을 거쳐 1986년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30여년이 흐른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과 더불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파리의 랜드마크가 됐다.

오르세 미술관은 호불호가 갈리는 고미술이나 현대미술과 달리 상대적으로 대중의 인기가 많은 인상주의 걸작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전체 컬렉션은 회화, 조각, 사진, 그래픽 아트, 가구, 공예품 등 약 260만 여 점.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에드바르트 뭉크와 같은 인상파 작품들이 대거 전시 돼 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 모네, 마네, 폴 세잔느, 오귀스트 르느와르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상주의 작가도 만날 수 있다. 3층 구조인 미술관에는 이밖에도 인상파를 중심으로 신인상파, 후기인상파,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나비파, 아르누보 등 19세기의 주요 미술흐름이 연대기별로 정리돼 있다.

▲ 홍영진기자 문화부장

3층 구조인 미술관은 입장과 동시에 장대한 공간이 펼쳐지며 유리로 된 돔형의 천장과 기차역 당시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대형 벽시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1층은 과거 플랫폼이던 곳. 귀스타브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 밀레의 ‘만종’ 등 사실주의 회화와 조각 컬렉션이 자리하고 있다. 테라스처럼 형성된 2층에는 상징주의, 아르누보 계열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꼭대기 3층에는 마네의 ‘올랭피아’ ‘풀밭위의 식사’를 비롯해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등 교과서에서 주로 봐 온 명작들을 바로 눈 앞에서 관람하게 된다. 무엇보다 옥외 테라스의 전망도 놓칠 수 없는 장면이다. 센 강 너머 루브르의 거대한 건축물과 그 너머 한참 멀리 떨어진 몽마르트 언덕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시계바늘 너머로 부서지듯 실내로 들어오는 햇살이 찬란하다. 홍영진기자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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