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식·생활용품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시작으로 촉발된 막연한 공포가 ‘살충제 계란’ ‘화학 생리대 파문’으로 현실화된데 이어 휴대전화 관련 용품에서도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수많은 화학생활용품들의 성분이 재조명되면서 안전성 문제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지만 관리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해 온 정부 당국의 소극적 행정탓은 아닌지 묻고 싶다.

한국소비자원은 시중에 유통·판매 중인 휴대폰 케이스 30개 제품(합성수지 재질 20개, 가죽 재질 10개)을 대상으로 유해물질 안전성 및 표시실태를 조사한 결과 6개 제품에서 카드뮴과 납이 검출됐다고 24일 밝혔다. 이들 모두 제조국이 중국이었다. 3개 제품의 경우 유럽연합 기준(100㎎/㎏이하)을 최대 9219배 초과하는 카드뮴이, 4개 제품에서 유럽연합 기준(500㎎/㎏이하)을 최대 180.1배나 넘는 납이 나왔다. 또 1개 제품은 기준(어린이제품, 0.1%이하)을 1.8배 초과하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DBP)가 검출됐다. 어린이가 사용하는 제품의 경우 어린이 제품안전 특별법에 따라 카드뮴은 75㎎/㎏ 이하, 납 300㎎/㎏ 이하,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0.1% 이하로 함량을 제한하고 있다. 납은 노출될 경우 식욕 부진과 빈혈, 소변양 감소, 팔·다리 근육 약화 등을 유발할 수 있고, 카드뮴의 경우 폐와 신장에 유해한 영향을 미쳐 발암등급 1군으로 분류된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내분비계 장애 추정 물질로 정자수 감소와 유산 등 생식 독성이 있다.

국민들은 무엇을 먹고, 어떤 용품을 써야할지 모를 혼돈 상태에 놓여 있다. 앞서 양계장 진드기 퇴치를 위해 사용됐던 피프로닐이 계란에서 검출돼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닭에서도 맹독성 살충제인 DDT가 검출돼 전 국민을 먹거리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생리불순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 것으로 의심되는 릴리안 생리대 파문은 기저귀 등 일상 생활용품의 공개되지 않은 화학성분에까지 두려움을 갖게 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맞닥뜨린 화학제품의 역습에 일상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국내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 기준을 제시하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의 구조적 문제에 그 원인이 있다. 신규 화학물질에 대해서만 물리·화학적 특성에 관한 자료와 인체 및 생물체에 대한 독성자료를 제시하도록 규정, 기존 화학 물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경우에는 유해성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처럼 허술한 관리규정으로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할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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