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에 지급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함에 따라 경제계 전반에 큰 후폭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은 31일 기아차 노조원 2만70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근로자에게 지급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가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며 3년치 밀린 임금 4223억원을 추가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노조가 청구한 금액 1조926억원의 39%다. 회사 측이 주장했던 신의칙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는 원칙으로, 기아차는 “과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노사간 암묵적인 합의를 존중해야 하고,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회사 경영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해 왔지만 재판부는 그동안 상당한 순이익을 거뒀고 순손실이 없다는 이유를 근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정·재계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기아차는 이번 판결로 부담해야 할 실제 금액이 1심 판결금액의 3배가 넘는 1조원 안팎으로 추산, 당장 올 3,4분기 적자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최대주주인 현대차에도 부담으로 작용, 현대차 그룹 전체가 경영악화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래 지급분으로, 확대된 통상임금에 맞추게 되면 야근·잔업 할증 임금도 올라가게 된다. 기아차의 경우 기존보다 약 50%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기아차 평균 임금은 9600만원에 달했다. 가뜩이나 생산, 내수, 수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인건비 부담까지 가중된다면 앞날이 어찌될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아차의 통상임금 1심 판결을 문제의 해법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번 판결을 새롭게 문제를 풀어가는 시작점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통상임금이 내포하고 있는 딜레마때문이다. 기업을 떠나 국가 경제에 미칠 파장이 크고, 국민 대다수인 급여노동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참으로 중대한 사안으로, 그리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원칙적으로는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는 근로자의 합리적 요구를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오랜 세월 굳어진 임금체계 개선을 위한 경제계의 일방적인 피해를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 심급에 따라 달라지는 사법부의 모호한 잣대에 의한 분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사 상생의 합리적 기준 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으로,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어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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