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울산건축사협회 공동기획
(3) 집의 감각, 거주감각

▲ BIG 설계의 코펜하겐 ‘VM하우스’의 보행로변의 입면. 미니어처의 단면처럼 보이는 입면은 살림살이들을 통하여 입체적이고 다양한 공간의 사용방식을 다 드러내고 있다. 타자와 도시에 대한 그들의 열린 문화와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올해는 울산건축 성년이 되는 해
11월 ‘우리집, 울산’을 주제로
울산에서 처음 건축문화제 개최
‘신인류 보완계획’등 기획전 통해
작가들의 생각·창의성을 공유하고
건축 설계의 가치·가능성 경험
‘거주감각’을 회복하는 기회로

산다는 것은 자기다움의 표현이며 집은 나의 아지트이자 삶의 거점이며 생활과 실존의 표현이다. 누구나 자신을 닮은 자신의 집을 꿈꾼다. 다른 사람의 집을 설계하고 설계를 가르치는 것이 일인 필자도 언젠가는 나 자신을 닮은 집짓기를 소망하며 틈 나는 대로 재밌는 상상을 끄적거리곤 한다. 그런데 집을 꿈꿀 수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다. 5~6년쯤 전, 미혼모의 집(가칭)을 운영하고 계시던 지인이 필자에게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왔다.

미혼모들과 글쓰기를 해 보니 많은 비율의 미혼모들은 ‘집’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지 않는데, 이는 어릴 때부터의 학대나 폭력 등 불운한 가정생활과 관련이 깊으며, 따라서 아이와 함께 돌아갈 집에 대한 희망 또한 없기 때문에 출산 후 아이를 키운다는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 BIG설계의 8 House. 주거와 복합시설들이 함께하는 고밀도의 주택단지를 설계하면서도 좋은 풍경을 모두가 소유할 수 있도록 독특한 단지의 형태를 만들었고 ‘8’자의 평면을 입체로 비틀어 도시가로를 건물 내부로 끌어들였다. 반려견과 자전거, 유모차와 휠체어가 오가는 입체가로와 함께 설계된 집 앞 작은 마당마다 다양한 풍경과 활동이 이 단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미혼모들을 대상으로 미혼모의 집 운영진과 글쓰기 선생님, 필자 및 건축전공 대학생 멘토들이 함께 진행한 건축인문학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의 꿈은 미혼모들에게 ‘집의 감각’, ‘거주감각’을 갖도록 하는 것, 즉 자신의 공간과 집이라는 장소에 대한 이미지, 그리고 미래의 자신의 집을 그리거나 만들어가면서 그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미래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나아가서는 자신과 타인을 돌 볼 수 있는 에너지를 갖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건축인문학 프로젝트는 한 번의 글쓰기, 한 번의 건축작업을 한 벌로 하여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나의 장소로부터 출발해 방으로, 집으로, 마을로 확장하며 진행됐다. 진행 후, 프로젝트 전후 삶의 행복감 등에 대한 지표의 변화와 함께 참여한 미혼모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았지만 짧은 우리의 프로젝트가 그들의 미래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어땠는지 감히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 필자 설계의 ‘지혜의 터전’ 프로젝트. 막다른 골목에 목조주택형식으로 어렵게 지어진 공동육아 어린이집. 가장 밝은 남측 공간에 방이 아닌 계단에 내어주었다. 사방이 집으로 둘러싸인 열악한 대지에서 높이를 활용해 목조주택의 가능성을 입체적으로 활용했다. 열리는 벽의 활용을 통하여 다락공간부터 거실까지 공간이 닫히거나 열리도록 설계해 통합생활과 단독생활이 가능하도록 했다.

오히려 고마운 것은 미혼모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필자 자신, 그들을 바라보던 여러 관점들이 변화했고, 건축의 가능성을 보았으며, 더 나아가서는 멘토로 참여했던 건축학전공 학생들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신과 건축과, 집의 의미에 대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주감각’이란 것을 필자는 건축과 도시의 곳곳에서 생각한다. 필자가 경험한 공동육아에서는 어린이집을 ‘시설’ 개념이 아니라 ‘집, 터전’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자기 집같은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지내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살림집과 같은 형식으로 설계되며 생활 또한 집에서와 같은 일상으로 이루어진다.

어릴 때부터 집과 친구에 대한 충분한 자연스러운 감성을 체득하는 것, 이것은 자라나면서 생활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도시 거주민으로서 자기답고 능동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 SAAI 건축이 설계한 설계의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어쩌다집’. 민감임대, 코하우징 형식의 집. 문화기획자, 건축가, 디자이너, 한의사를 직업으로 하는 비슷한 생각을 지닌 30~40대가 모여 만들었다. 가게, 사무실, 원룸, 쉐어하우스, 복층주거가 골목과 마당, 라운지를 공유한다. 사진제공 조재용

학교나 업무공간, 병원 공간, 크게 나아가서는 교정시설도 마찬가지이다. ‘시설’에서 ‘거주하는 집’으로의 인식의 전환을 통해, 배우는 학교보다는 나와 친구가 거주하는 집과 같은 학교가, 수직적인 감시나 긴장이 팽배한 업무공간보다는 집이나 마을개념으로 설계돼 동료와 새로운 생각들을 수평적으로 협력하도록 하는 업무공간이 더 창의적인 결과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최근의 현대건축의 다양한 사례들은 이미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의 현실세계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우리의 ‘거주감각’이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집과 도시는 형식도 규모도 너무도 빨리 변하고 커졌다.

집에 대한 개념 또한 ‘사는 집’이라기보다는 ‘사고파는 집’으로 변해 왔다. 이에 더해 밀도 높고 바쁜 도시는 녹록치 않아서 꿈꾸는 집과 현실의 집 사이에는 늘 좁혀지지 않을 만큼의 틈(gap)이 우리를 약 올린다.

땅, 햇빛, 용적률, 주차공간, 건축비 등등 모든 것이 유한하고 팍팍한, 더구나 원하건 원하지 않건 누군가와는 마주치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 대도시에서는 내 성격대로 살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보니 ‘거주감각’은 다소 순진한 타령처럼 느껴지고 우리는 종종 나 자신과 집을 연결 짓는 것에 대하여도 집과 도시 안에서 가족이나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데 있어서도 서툴다.

‘서툼’은 우리 건축과 도시의 풍부한 가능성을 살리지 못하는 건조환경의 문제로, 사람살이의 문제로 연결된다.

‘건축설계’ 작업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가능성과 힘을 가진다. 때론 열악하고 한정된 자원과 환경 안에서 거주자의 ‘거주감각’을 회복하게 하고 ‘서툰 살이’를 ‘지혜로운 살기’로 자라게 도와주는 ‘지혜로운 설계’의 힘. 거주자 자신이 케어할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갖고 자신이 기꺼울 만큼의 사람관계와 공간밀도를 허용하면서 그러면서도 지불 가능한(affordable), 즉 지속가능한 살기를 위한 창의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그것이 방(원룸, 고시텔)이든, 단독주택이든, 상가주택이든, 다세대주택이든, 연립주택이든, 아파트든, 그 어떤 기능을 가진 형식을 가진 집이건 간에 말이다.

▲ 유명희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돈과 밀도(면적과 용적), 프라이버시와 접촉, 소유와 공유 간의 선택과 갈등의 단계마다 창의적으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때로는 건축의 기능이나 형식 자체를 새롭게 고안해 낼 수도 있다.

설계를 통해 거주자들로 하여금 충분하게 자신과 만나게 하고, 보다 너그럽고 열린 마음으로 이웃과 도시를 마주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몇 장면들은 SAAI 건축의 ‘어쩌다 집’을 비롯해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도 ‘거주감각’을 구체화하는 건축설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2017년은 울산광역시와 더불어 울산의 건축이 성년이 되는 해, 11월에 열리는 울산의 첫 건축문화제의 주제로 ‘우리집, 울산’이 선정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특히 기획전 ‘점포주택의 상상’과 ‘신인류 보완계획’은 프로젝트 참여 작가들이 생각을 공유하고 실험하는 가능성이 되고 있다. 건축설계의 가치와 가능성을 경험하는 동시에 그간의 가쁜 호흡을 잠시 멈추고 ‘우리집 울산’의 ‘거주감각’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유명희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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