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사 복원, 문정부 100대 과제 선정...울산과 가야사 재조명 전문가 대담

▲ 12일 경상일보 8층 소회의실에서 열린 ‘울산과 가야사 재조명사업 전문가 대담’. 고대한반도에 철문화를 피우는데 북구 달천철장의 의미가 남달랐다며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무리한 해석보다는 지역학의 뿌리를 제대로 찾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일시 : 2017년 9월12일 오전 10시30분
장소 : 경상일보 8층 소회의실

부산 복천동 출토 4세기 유물
울산지역과 밀접한 연관 추정
고대 철 생산지 울산달천철장
가야 철기문화 원동력 가능성
울산 역사 출발점 우시산국도
가야문화권과 뗄 수 없는 관계
상호교류와 관계사 중심으로
조금씩 조심스럽게 풀어갈 것

잃어버린 왕국, 가야사 재조명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대한민국 역사문화계에 지속적인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 사업이 영호남 공동사업으로 채택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자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까지도 우리 고대사 중 가장 비중이 적었던 가야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본보는 지난 6월부터 베일에 가려져있던 대가야의 하지왕을 주인공으로 한 연재소설을 게재하며 독자들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고 있다. 또한 고대 가야의 역사문화사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온 울산과 부산지역 전문가를 초청해 12일 본사 8층 소회의실에서 ‘울산과 가야사 재조명 대담’을 가졌다. 신라, 고구려, 백제 3국과 달리 역사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못한 고대가야의 흔적을 울산 안에서 찾아보고 이를 올바르게 조명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 홍영진 경상일보 문화부장 진행
 

-홍영진 : 울산의 역사는 신라문화권 중심으로 거론돼 왔습니다. 역사적 흐름에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만, 그 틈새에 우리가 미처 알지못한 가야사 흔적이 있는지 이번 기회에 알아보고자 합니다. ‘울산에서 무슨 가야사를?’이라며 뜬금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지역을 막론하고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높은만큼 ‘울산’과 ‘가야’를 잇는 연결고리를 찾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더불어 이를 어떻게 조명하는 게 옳은 지도 궁금합니다.

▲ 김영민 울산대박물관 학예연구팀장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가야고고학 전공

-김영민 : 울산은 엄청난 인구밀도를 보여주는 청동기유적이 많은 반면 B.C 3세기에서 A.D 2세기의 유적은 현저히 빈약합니다. 3세기를 전후로 탁월한 유구규모와 부장양상이 다시 나타나는데, 이후부터는 경주문화권으로 흡수되면서 4세기 이후로는 경주와 거의 동일해진 것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금관가야의 중요한 축인 4세기 부산복천동고분군의 유물이 울산지역 출토유물과 극도로 비슷한데요. 물질문화에 있어서 상부구조에 해당하는 유물은 복천동고분군과 울산(경주)이 유사하고, 하부구조에 해당되는 유물은 복천동고분군과 김해가 유사합니다. 이는 복천동물은 종 해고분군의 묘제와 특정 유물은 김해보다 오히려 울산지역과의 유사성이 두드러지는데요. 이는 복천동의 뿌리가 울산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의미합니다.

▲ 박창희 전 국제신문 대기자 ‘발로쓴 700년 가야왕국의 비밀-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저자

-박창희 : 인류문명사에 획기적인 전환을 일으킨 동기가 불과 철입니다.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고대 철생산지는 울산달천철장이지요. 이 곳은 사로국이 신라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부터 가야철기문화에도 원동력을 제공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후한서>와 <삼국지위지동이전>에 등장하는 ‘변진의 철’은 생산규모나 유적분포로 미루어 울산달천철장이 아니라고 단언하기 힘듭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석탈해왕과 수로왕의 결투설화도 사실은 달천철장과 주변을 철을 두고 벌인 권력쟁탈전이지 아닐까요?

-김하기 : 철도 있지만, 저는 해상교역루트의 쟁탈권을 놓고 붙은게 아니가 합니다. 고대는 육로보다 해로의 중요성이 지금보다 훨씬 컸어요. 시기를 앞당겨 삼국사기에 언급된 ‘포상팔국의 난’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낙동강 하류 및 경상도와 전라도 남해안 일대 8개 소국들이 209~215년에 걸쳐 금관가야를 침략한 사건인데, 대체로 창원, 함안, 사천, 고성, 나주, 멀게는 일본의 북규슈 일대까지 해당됩니다. 당시 해상루트를 지배했던 금관가야와 신라에 대한 반격으로 해석됩니다만, 어쨌든 그 중 연합함대가 울산 일원의 우시산국 갈화(청량)를 공격하면서 거대한 해전이 벌어졌고, 금관가야가 신라에 도움을 요청하자 신라가 나서 연합함대를 물리쳐 7년간의 난은 종식됩니다.

-홍영진 :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가야와 신라사를 유추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겠군요.

▲ 김하기 본보 연재소설 ‘하지태왕기-대가야제국의 부활’ 작가

-김하기 : 네. 작가이기에 좀더 자유로운 견지에서 말씀드리자면, 신라와 가야는 같은 뿌리 같은 문화에서 출발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초기에는 울산역사의 출발점인 우시산국(웅촌)도 가야문화권과 완전히 분리될 순 없죠. 탈해왕때 우시산국과 거칠산국(동래)은 신라에 병합됐으나 왕이 죽은 뒤 거칠산국은 다시 가야에 복귀했고, 울산은 계속 신라영역안에 남았다고 봅니다. 달천과 사연리 늠네의 가야유물도 변한시대 혹은 초기가야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박창희 : 해상교역의 중요물품인 당시 고대 철문화를 좀더 연구하면 울산의 가야 흔적을 찾는데 도움이 되겠지요. 거듭 강조합니다만, 달천철장을 재조명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현재는 울산시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돼 있으나 전국에 흩어진 한반도 철 역사의 산실임을 부각시키고 가야를 포함한 한반도 고대사의 흥망성쇠 내력을 간직한 생산거점으로 새롭게 들여다 봐야 합니다. 울산쇠부리축제도 있습니다만, 단순 문화관광축제로만 가지말고 좀 더 역사문화적으로 의미를 확장해야겠지요.

-홍영진 : 가야사는 학자에 따라 짧게는 300년, 길게는 700년까지도 봅니다. 사료부족으로 시기와 물리적인 공간을 규정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논쟁이 많은데다 빈 공간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큰 과제입니다. 올바른 재조명 작업이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향후 울산과 가야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가야 할 지를 실질적인 도움말을 들려주시죠.

-김하기 : 정부방침처럼 영호남지역통합으로 가야사를 바라보자면 ‘대가야’가 이끄는 후기가야에 방점을 둬야합니다. 연재소설 주인공인 하지왕도 대가야의 인물이지요. 역사적 사료를 기초로 합니다만,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져야 역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왕 시작된 기야사 논의가 정치논리에 빠지지않도록 작가는 작가대로, 학자는 학자대로 다같이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10회 정도 지역청소년과 가야사를 논하는 자리가 있을텐데,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데 노력하겠습니다.

-김영민 : 역사는 사료를 기초로 하고, 해석에 무리수를 두지 않아야 합니다. 울산은 상당히 중첩된 시기의 유적이 많습니다. ‘이것이 울산 가야사의 흔적이다’하는데 너무 연연하면 안될 것 같구요. 학술조사를 거친 기존의 가야사를 온전히 부산김해지역만의 역사로만 보지말고, 울산을 포함한 주변 지역의 물적·인적 상호교류가 있었기에 가능한 시대였음을 밝혀나가야 겠지요. 상호교류와 관계사 중심으로 조금씩, 조심스럽게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박창희 : 가야사복원이 국정과제에 포함된 뒤 가야사에 대해 관심이 갑작스럽게 높아진 건 사실입니다. 부작용도 우려되지면, 거꾸로 그 동안 중요성을 알면서도 미처 다루지못한 지역사를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요. 각 지역마다 지역학이 있는데, 이번 참에 뿌리를 제대로 잡고 의미를 찾아 스토리텔링할 부분이 있으면 새롭게 해석해야죠. 본질을 파악하고 연구범위를 확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정리 이우사기자 woos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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