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수치심 호소에도 성범죄 아닌 재물손괴·폭행죄로만 처벌

 

전문가 “쾌락 추구 범행, 성범죄로 다스려야 재발 막아”

 

이모(27·여) 씨는 올해 여름 소름 돋는 일을 겪은 뒤 짧은 치마를 입기가 두렵다.

지난 7월 3일 서울 지하철 충정로역 승강장에서 다리에 차가운 것이 닿는 느낌이 났다. 흰색의 불투명한 액체였다.

불쾌한 일은 같은 달 18일 충정로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또 발생했다.

자신의 다리와 옷에 액체가 튄 것을 확인하고 뒤를 돌아보니 정장을 입은 30대 남성이 있었다.

범인이라는 생각에 역무원을 통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남성이 사라진 뒤였다.

열흘 뒤 사건은 또 발생했다.

같은 장소에서 또다시 자신의 다리와 옷에 액체가 튀었고 뒤를 돌아본 순간 깜짝 놀라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지난번과 동일한 남성이었다.

이 씨는 지하철을 타고 도망가는 남성을 추적하며 신고했고 경찰은 남성을 붙잡았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이 남성이 A(38) 씨인 것으로 파악했다.

확인결과 A 씨에게 당한 여성은 이 씨 말고도 3명이 더 있었다.

투명한 액체는 A 씨의 침으로 밝혀졌다.

A 씨는 경찰에서 “성적인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씨는 “자신이 치마를 입었을 때만 다리 쪽에 반복적으로 액체가 튀었다”며 강제추행을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에게 상습폭행 혐의를 적용해 입건했지만 피해자들이 성적인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하고 있어 강제추행 혐의도 적용할 수 있을지 법리적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과 부산에서 이와 유사한 범행이 잇따르면서 여성들의 불안감이 커진다.

▲ 지난달 18일 부산대에서 발생한 먹물 테러.

지난달 부산대에서 스타킹을 신은 여대생 다리에 먹물을 뿌리고 달아난 남성이 있다는 신고가 잇따라 경찰이 추적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도 먹물 테러가 발생했다.

최근 열린 부산 원아시아페스티벌 공연장에서 한 남성이 자신의 옷에 정액으로 추정되는 액체를 묻혔다는 신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16차례에 걸쳐 스튜어디스 복장을 한 여성의 스타킹에 먹물을 뿌린 뒤 화장실에 버린 스타킹을 가져간 정모(30) 씨는 지난 3월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 씨는 과거에도 3차례에 걸쳐 비슷한 범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당시 여성들은 강남역에서 먹물테러를 당하면 스타킹을 버리러 혼자 화장실에 가지 말라는 당부의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피해 여성들이 성적 수치심을 호소했을 뿐 아니라 정 씨 또한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범행”이라고 자백했음에도 수사기관은 신체적 접촉 등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범죄로 판단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범죄를 당했을 때 피해자들은 성적인 수치심을 느끼며 2차 피해로 이어지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여성들이 느끼는 고통과 법적인 잣대 사이에 다소간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 심리 전문가들은 2차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므로 성범죄로 강력하게 처벌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특정 신체 액체를 뿌리는 행위는 상징적인 행위로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명백한 성범죄”라면서 “성적인 쾌락을 목적으로 한 범죄인데 성범죄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죄의식 없이 같은 범행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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