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 후보자들간 음모극이 크렘린궁 밖으로 불거질 것”

▲ '슈퍼 푸틴' 주제 미술품 전시회에 걸린 푸틴 대통령 그림.

뉴욕타임스 “푸틴 영향력 이미 퇴조 조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은 그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적인 상황에서 ‘푸틴의 궁정’에서 벌어진 후계 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의 의미가 더 크다고 뉴욕타임스가 11일(현지시간) 전망했다.

푸틴 대통령이 내년 3월 대선에서 당선돼 2번째의 재선 임기를 마칠 무렵 어떤 일을 벌일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지만, 그의 ‘내부자들’은 이미 그가 크렘린 궁을 떠나는 것에 대비해 자신들의 현재 권력을 유지하고 지도부 교체에 따른 낙진을 피하기 위한 경쟁에 나섰다는 것이다.

러시아 헌법상 대통령을 내리 세 번 연임할 수 없다.

“(내부자들간) 권력 쟁탈전이 내년 러시아 대선 경쟁에선 찾아볼 수 없는 그 모든 극적인 요소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이 매체는 예상하고 “대부분 크렘린 궁의 높은 담장에 감춰졌던 정치 음모극들이 앞으로 점점 더 자주 밖으로 불거져 나오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유서 깊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럽대학이 푸틴 대통령의 3차례에 걸친 구제 노력에도 폐쇄된 일이나 전직 장관이 부패혐의 재판정에서 푸틴의 측근에 의한 정치적 음모이자 배신이라고 공개 주장하고 나선 일 등은 과거 같으면 푸틴이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처리했을 갈등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러시아 지배 엘리트 내부의 엄청난 긴장, 엄청난 불확실성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고 정치분석가 콘스탄틴 가제는 말했다.

“그들은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서로 음해하며, 서로 상대측에 대한 보고서를 써서 푸틴에게 가져갈 것”이라는 것이다.

푸틴은 앞으로 3개월여의 대선 기간이 끝나면 은퇴계획 수립에 착수할 터인데, 개헌을 통해 종신 집권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뉴욕타임스는 봤다.

37년간의 장기집권 끝에 최근 권좌에서 쫓겨난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꼴이 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푸틴은 자신을 역사적 인물로 생각한다. 역사책에 그렇게 남으려면 무가베의 실책을 저지르지 않고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콘스탄틴 칼라쵸프 정치전문가그룹 대표는 진단했다.

푸틴은 그러나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별장에서 노후를 보내거나 더 나쁘게는 교도소에 가기보다는 개헌을 통해 군사나 안보관련 고위기구를 만들어 그 의장을 맡음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푸틴이 그냥 물러날 리는 없다. 후계자가 실정하면 후계자뿐 아니라 자신도 같이 처벌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라고 콘스탄틴 가제는 말했다.

푸틴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명돼 대통령이 된 지난 2000년 이래 러시아 최고권력자로서 권력을 집중해왔기 때문에 “푸틴이 떠나버리면 ’푸틴의 러시아‘도 그렇게 되는 셈이어서 위험스러운 상황이 될 것임을 그의 무리는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그가 떠난 후에도 ’푸틴의 러시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고 정치분석가인 글렙 파블로프스키는 말했다.

이 때문에 ‘푸틴의 궁정’ 내부 각 파벌은 푸틴에게 자신들의 집단 이익 유지에 가장 유리한 후계자를 지명해줄 것을 바라지만, 후계자 후보들은 아슬아슬한 고공 줄타기를 해야 한다. 너무 강하거나 이른 시일에 밀어붙였다간 위협을 느낀 푸틴 대통령에게 숙청당할 수도 있다.

푸틴 대통령의 임기 말이 다가오면 후계자를 경쟁자들로부터 보호할 힘이 떨어지게 될 것이므로 후계자 후보들은 너무 일찍 그 타이틀이 공개적으로 붙는 것도 피하려 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예상했다.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이 이미 퇴조 기미를 보이는 것은 알렉세이 울류카예프 전 경제장관이 지난 7일 법정에서 감정에 북받쳐 쏟아낸 독백에서도 드러난다.

계약 특혜의 대가로 국영 석유회사로부터 200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정에 선 울류카예프는 이 회사 경영자인 이고르 세친이 놓은 덫에 걸린 것일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군 정보기관 출신인 세친은 푸틴의 측근이다.

울류카예프는 고급 포도주와 수제 소시지 선물인 줄 알고 받았는데 달러가 가득 들어 있었다며, 영국 시인 존 던의 시구 “누구를 위하여 (장례식)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 하지 말라, 너를 위해 울리거늘”을 인용하며 러시아 엘리트층을 향해 “당신들 누구를 위해서든 종이 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재판의 증인 출석을 거부해 힘을 과시한 세친은 화해로 풀라는 푸틴 대통령의 공개적인 만류에도 대형 투자회사 시스테마를 상대로 거듭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세친과 체첸공화국의 독재자 람잔 카디로프는 공공연하게 협력관계를 맺고 점점 푸틴으로부터 독립적인 행동을 하면서 푸틴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푸틴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질수록 후계자 선정에서 영향력이 줄어들고 크렘린의 내부자들은 점점 더 대담하게 나설 것이라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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