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성 구영중학교 교사

본교에서는 매달 학부모와 교원이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책생각 나누기’가 열린다. 개교 이래 계속돼온 이 행사는 벌써 71회나 개최되었는데, 철쭉 핀 천성산에 올라 돗자리를 깔고 책이야기도 하고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지난 달에는 70회를 기념해 ‘나만의 장서인(책 도장) 만들기 체험’을 하기도 했다.

이번 달에 선정된 도서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다. 1915년, 그러니까 근 100년 전에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청소년 권장도서나 토론대회 논제로 사용되며 스테디셀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옷감회사 영업사원인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해버린다. 출근용 기차는 이미 떠나버렸고, 가족들은 방문을 두드리지만 그레고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징그러운 다리를 움직이는 것뿐이다. 급기야 상사가 집으로 찾아오고 그동안 성실히 일해 왔던 그레고르는 이 상황을 설명하려고 끝없이 이야기하나 그들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본인만큼이나 충격에 빠진 건 역시나 가족들이다. 그러나 비통함과 슬픔으로 주인공을 걱정하며 먹이를 챙겨주던 가족들은 계속되는 이 상황에 지쳐간다. 엄마와 여동생은 주인공을 위한답시고 그의 방에 있던 가구들을 모조리 끄집어내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를 놀라게 한 것에 화가 난 아버지는 그레고르를 향해 사과를 던진다. 하녀를 자르고, 하숙생을 받으며 다른 가족들이 돈을 벌러 나가게 되면서 가정의 많은 것이 변해버린다. 그레고르가 그동안 가족을 먹여 살리던 부양자에서 이젠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기생(寄生)자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너무나 충격적인 결말의 이 작품은 카프카 자신의 암울했던 삶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 비극적이다. 권위적인 아버지와 소극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카프카는 어릴 적 계속된 동생들의 죽음으로 부모님의 많은 기대를 받으며 이해와 관심보다는 엄격한 훈육 속에 자랐다. 밤에 물 한잔 떠오라던 아버지의 심부름을 제대로 못해 다음 날 새벽까지 속옷차림으로 추위에 벌벌 떨어야했던 어릴 적 끔찍한 기억은 후에 45쪽에 달하는 편지를 아버지에게 적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좋아하는 문학 대신 법학을 전공하고 글쓰기 대신 노동자재해보험국에서 밥벌이를 하며 평생 자기혐오에 시달리다 41세에 폐결핵으로 죽고 마는 카프카는 바로 그의 작품 속 끔찍한 ‘벌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자, 이쯤 되면 여러분들은 누가 떠오르는가?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남편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책생각 나누기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장애인이 떠올랐다고 하고, 공부하느라 힘들어하는 자녀가 떠오른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한 사람은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서 몇 주간 자리보전하던 시아버지를 떠올렸다 했다.

자연스레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되는 12월이다. ‘돈을 벌어오는, 밥을 차려주는, 공부를 잘 하는, 나에게 손 벌리지 않는’ 이러한 ‘자격’이나 ‘조건’이 아닌 그 자체로 의미있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나는 가족을 대하고 있는지? 12월에 카프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만 같다. 김미성 구영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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