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노조가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부결했다. 9일 실시된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결과 투표자 8804명 중 56.11%(4940명)가 반대했고 찬성은 43.03%(3788명)에 그쳤다. 회사 안팎으로 위기 의식이 널리 확산돼 있는데다 어렵게 2년치 임단협의 잠정합의를 이루어낸 만큼 가결을 기대했던 사측은 물론이고 호소문을 내며 타결을 촉구했던 지역사회도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앞서 지난달 22일 현대자동차 노조도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부결하고는 재협상을 못한채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라 지역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대중공업이 처한 국내외 사정을 보면 이번 잠정합의안 부결은 재도약의 기회와 의지를 한풀 꺾는 원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조선업 위기가 시작되자 현대중공업은 국내 다른 조선사와는 달리 발빠르게 자구책을 내놓으면서 위기 극복에 적극 나섰다. 중역의 감축과 부장 이상의 임금 삭감은 진작에 시행했고, 분사를 통한 구조조정과 비핵심자산 정리를 통한 경영정상화에도 적극 나섰다.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 보릿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체급을 줄여 다시 나아갈 힘을 비축한 것이다.

노사협상은 그 마지막 단추나 다름없다. 이런 절박한 시점에, 교섭을 시작한지 1년7개월만인 지난달 29일에, 마침내 잠정합의안이 마련됐다. 마치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이 온 힘을 다해 달리기 위해 한껏 몸을 움츠리듯 노조도 몸을 낮추고 위기극복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지부장이 강성인만큼 지부장의 판단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를 기대하며 가결을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다. 조합원들은 경영진의 절박한 심정은 물론이고, 2년이나 끌어온 교착상황을 풀고 2018년 임단협을 통해 새로운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노조 집행부의 진정성을 외면했다. 노조는 부결의 원인으로 상여금 분할 지급과 기대에 못미친 성과금을 꼽고 있다. 반면 현대중공업의 잠정합의안을 따랐던 일렉트릭, 건설기계, 로보틱스 등 분할 사업장은 찬반투표를 가결했다. 이들 노조가 현대중공업과 사뭇 다른 판단을 했다는 사실도 곱씹어 보아야 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임금에 집착한 나머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이번 부결이 현대중공업의 위기극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다. 노조는 회사측에 재교섭을 요구하겠다고 한다. ‘마른 수건까지 짜낸’ 회사가 과연 무엇을 더 내줄 수 있을는지 두고 볼 일이다. 대표성을 갖고 노사협상을 하고도 조합원의 찬반투표로 부결하면 재협상을 하는 사례가 반복된다면 노조 대표의 협상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도 되짚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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