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지난 60여년간 ‘조국 근대화’라는 기치 아래 모든 것을 희생해온 도시다. 동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죄다 공단에 내주고 공해도시라는 오명을 뒤짚어썼다. 사망사고를 비롯해 근로자들의 산업재해도 셀수 없이 많았다. 근로자들은 물론 울산 시민들의 건강과 삶을 담보로 얻어낸 결실이 바로 조국 근대화인 것이다.

울산에는 여전히 국가공단이 2곳 있다. 이 국가공단에서는 크고 작은 산재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공단에서 발생하는 화학사고는 화상을 동반하는 대형 사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신속하게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울산에는 국립 산재병원 하나 없다. 누가 들어도 말이 안된다. 산재병원은 업무상 부상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노동자에게 적절하고 신속한 의료제공과 사회복귀를 돕는 것에 목적을 두고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이 설치운영하고 있다. 창원, 안산, 대전, 인천, 동해, 정선, 태백, 순천, 대구 등 대규모 공단이 있는 지역에는 거의 산재병원이 있다.

노동부는 운영상의 애로로 인해 신규 산재병원 설립에 소극적이지만 울산만큼은 산재병원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산재병원들을 통괄할 수 있는 산재모(母)병원 건립을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산재모병원은 산재환자들의 치료는 물론이고 산재병원들의 의료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연구기능도 부가된다. 마침 생명과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UNIST와 연계하면 치료기술 개발은 물론 질병의 원인규명을 해내는 단계까지 진입할 수 있다.

문제는 예비타당성조사다.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국립의료시설을 두고 경제성을 요구하는 자체가 아이러니이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타당성조사를 마무리하고 기획재정부로 넘겼다고 한다.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현안사업이 줄줄이 주저앉은 경험을 가진 울산이다. 산재모병원의 설립까지 타당성 조사에 발목이 잡힐 경우 울산시민들의 울분을 가라앉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건 울산지역 공약 가운데 국립공공병원설립이 들어 있다. 산재모병원은 분명 국립공공병원이다. 산재모병원 설립이 곧 문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하는 일이다. 공연히 별개인양 다룰 이유는 없다. 산재모병원 설립을 전제로 달려온 지난한 경험을 고려할 때 국립공공병원이라는 새로운 길을 다시 간다는 것은 성공가능성도 낮지만 시간과 행정력의 낭비도 엄청나다. 일단 국립산재모병원이 마지막 고개를 넘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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