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흔들고 있는 미투운동
잘못된 성인식 개선의 계기는 좋으나
자칫 무고로 억울한 이는 없어야

▲ 울산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미투(Me Too)운동’의 열풍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오랜 세월, 주로 남성들로부터 성(性)적 희롱을 당했던 여성들이 그간 부끄럽고 용기나지 않아 숨겨왔던 과거 일을 다투어 공개하고 있다. 이어서 당시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줄을 잇는다. 일부 가해자들은 깊이 반성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몇 십 년 전 일을 기억도 못 할 뿐 아니라, 설사 기억한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성희롱이야?’ 하고 한밤중에 날벼락 맞은 모습을 보인다. 가해자의 소속기관도 정관계, 법조계, 학계, 재계, 문화예술계, 의료계, 연예계, 언론계, 군(軍) 등을 망라하고 있다. 국민다수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아왔던 인사가 하루아침에 ‘더러운 돼지’로 전락하는 등 그 여파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 사회 깊이 뿌리박힌 잘못된 성인식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으나 자칫 허위사실을 사실인 양 SNS에 공개해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균형감을 잃어서는 안될 것이다. ‘가해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피해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부끄러움과 괴로움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성희롱의 특성상 그 판단은 피해자의 일방적 진술에 대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가 처음 보는 젊은 여성에게 ‘한잔 따라 드릴까요? 제게도 한잔 따라주세요’하면 대체로 상호간에 달달한 느낌으로 받아들여 문제없는데, 우월적 지위에 있는 남자가 똑같이 할 경우, 혹시 여성이 강압으로 받아들이고 수치심을 느낀다면 이는 성희롱이 될 수 있다.

성희롱의 가해자는 대개 영향력 있는 중·장년 남성이요, 이들에게 위기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이 시점에 인간의 감각기관의 정의와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성 싶다. 기본적으로 외부 신호를 받아들이는 입력방법은 보고(視覺), 듣고(聽覺), 냄새 맡고(嗅覺), 맛보고(味覺), 만지는(觸覺) 오감(五感)이다. 당연히 눈(目), 귀(耳), 코(鼻), 입(口), 손(手)이 입력기관(入力機關)들로서 각기 이 역할을 담당한다. 이 외의 입력방법을 육감(六感)이라한다. 그런데 이 다섯 개의 입력기관 중에서 입과 손은 특별하다. 즉 말하고, 글 쓰고, 행위 함을 통해 뜻을 표현하고 좋든 싫든 상대에게 영향을 주는 출력기관(出力機關)을 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입과 손만 조심했으면 되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음흉하게 여성의 신체부위를 쳐다봄으로써 혹시 여성이 수치를 느꼈다면 이젠 이도 엄연한 성희롱이다. 이제 눈도 성희롱의 위해(危害)를 줄 수 있는 출력기관이 되었고, 조심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실제로 나의 친구 한사람은 교수시절 연구실에 면담하러 들어온 여학생이 ‘교수가 다리를 쳐다보아 커다란 수치심을 느꼈다’고 학내 성추행위원회에 고발하여 큰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주위로부터 ‘제발 여성에게 관심 좀 가지라’고 충고를 들어왔던 백면서생이다. 더욱 억울했던 것은 “모든 걸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위원회위원들의 충고를 들었을 때라고 했다.

일본말에 ‘嫌らしい中年の視線(중년남자의 징그러운 시선)’이란 말이 있다. 이젠 눈마저 조심해야 한다. 코도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들에게서 나는 화장냄새나 향수냄새를 맡는다고 킁킁대다 혹시 여성이 거북함이나 수치스러움을 느낀다면 이 역시 성희롱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눈과 코마저 출력기관이 된 이상, 아직까지 입력기관으로 꿋꿋하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귀 뿐이다. 음악을 듣고 만들고 해석하는 일로서 인생 후반을 지내고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귀만 쓰니까.

울산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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