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사고는 안전하다 여길때가 위험
대형사고 이후 일시적 관리강화 아닌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지속투자 절실

▲ 심재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원장

얼마 전 재난예방과 관련된 자문회의가 있어 모 지자체를 방문했을 때 재난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가장 큰 애로점이 무엇인지를 물어 본 적이 있다. 담당공무원의 대답은 뜻밖에도 재난이나 큰 사고가 나지 않을 때가 가장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재난이나 사고가 한동안 일어나지 않으면 재난관련 업무는 지자체의 정책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인력이나 예산의 지원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중앙정부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행정안전부가 수행한 2018년 재난안전예산 사전협의(안)에 따르면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2015년도 정부 전체예산은 5.7% 증가한데 비해 재난안전예산은 18.5%가 증가한 14조7000억원이 투자되었다. 그러나 이후 재난안전예산은 점점 줄어들어 정부 전체예산 2016년 3.0%, 2017년 3.7% 증가한데 반해 재난안전예산은 각각 14조6000억원, 14조3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아이러니(irony)’라는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니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라고 정의돼 있었다. 필자가 굳이 사전까지 찾아 본 이유는 재난안전 분야만큼 ‘아이러니’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곳이 없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재난이나 대형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는 어김없이 관련 제도나 법이 만들어지고 그와 더불어 조직이나 예산 투자가 확대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보면 국가적 불행인 재난이나 대형사고가 역으로 우리나라 재난관리체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사실 재난이나 사고는 안전하다고 느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인 경우가 많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펠츠만 효과’라고 한다. ‘펠츠만 효과’란 자동차가 안전 공학적으로 진보할수록 사람들은 그 안전을 믿고 오히려 더 난폭하게 자동차를 몰아서 사고와 사망자수가 늘어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즉 안전에 대한 일방적인 믿음과 잘못된 인식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우리나라의 재난안전관리 국가정책이나 예산투자 측면에서도 ‘펠츠만 효과’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대형사고 이후 재난관리체계가 강화되고 일시적으로 투자가 확대되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그 사고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원이던 2014년 6월 당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을 발의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 두 달 뒤 발의된 이 법의 제안 배경에는 “세월호 참사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웠던 우리 사회의 민낯을 직시하게 한다. 이제는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고 되어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재난안전 정책이나 예산투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전을 위한 예산을 이윤과 효율 측면에서만 보면 일시적인 ‘비용’에 불과하지만 사람의 최우선 가치, 공동체의 최우선 가치가 안전이라는 인식에서 보면 ‘안전을 위한 예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치 있는 ‘투자’가 될 것이다. 국민이 잘 살면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이야 말로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이자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부를 내세우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심재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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