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H 선생님이 인공눈물을 눈에 넣고 있었다. 이젠 감정도 늙나보네? 농담 삼아 이렇게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실없는 소리를 한다고 그럴까 싶어 그냥 스쳐 지나갔다. 그는 예전에 ‘응답하라 1988’에 나왔던 ‘청춘’이라는 노래를 듣다가 그만 운전대를 부여잡고 병자처럼 엉엉 울었다고 이야기했던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가고 없는 날을 잡으려, 빈손 짓에 슬퍼지면…” 아마도 이 부분에서 울음을 터뜨렸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 살아오면서 울 일은 많았다.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울 일은 많다. 나는 눈물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나 감수성이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내 눈물의 기억들 중에는 동일한 것들이 매번 반복되는 것이 있는데, 고향집엘 다녀오면 그랬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왜 그리 마음이 편치 않던지, 왜 그리 마음은 쓸쓸하던지, 나이는 왜 그리도 많이 드셨는지, 돌아 갈 때 조심해서 내려가라며 손 흔들던 모습은 왜 그리도 마음이 아프던지, 눈물 바람이 불어왔다. 또 2월이면 겪던 반 아이들과의 이별. 해마다 겪는 이별인데도 푼수처럼 울컥 했던 날들이 있었고, 가난한 삶을 살았던 어머니의 한을 추억한 박재삼의 ‘추억에서’라는 시를 가르칠 때도 꼭 어김없이, 어떤 구절에서 이상하게도 목이 메어 왔다. (참고로 어떤 구절이냐 하면 ‘울 엄매야 울 엄매’ 이 부분이다. 중의적 표현으로 ‘우리 엄마’와 ‘울고 있는 엄마’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후자 쪽 때문이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아침에 출근할 때 아직 곤히 잠들어 있는, 늦은 밤 퇴근하고 돌아오면 또 평안히 잠들어 있는 막내의 모습에 짠하다 못해 찐한 느낌이 몰려와 눈물 바람이 자꾸 일렁인다. 막내와 나는 꼭 마흔 살 차이가 난다. 며칠 전 막내아이는 누나의 도시락 가방을 사와서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자신의 용돈으로 샀다는 편지글과 함께. 그리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단체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다. 난 그러라고 했고 막내는 좋아했다. 그러더니 가입비는 자신이 낼 테니 단복은 아빠가 사 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던 막내의 진지한 표정이 내 눈에 꼭 들어와 박혔다.

눈물은 한번 씩 드라마까지 이어지기도 하는데, 최근에 둘 다 아픈 기억을 가진 중년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에 나는 애틋해하고 있다. 거기에는 나를 눈물 나게 하는 장면과 슬픈 대사가 곳곳에 숨어 있었고, 아무도 없이 혼자 보는 날에는 준비도 없이 눈가가 흐려지면서 쪼르르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나는 눈물이 좋다. 다 큰 어른이 왜 푼수처럼 눈물 흘리느냐고 핀잔을 준다 해도 그런 나를 위로하는 고마운 한 마디가 생각난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눈물이 많다’고. 해마다 학생들의 자신을 소개하는 자료를 받아보면 ‘나는 이런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문항에는 따뜻하고 친절하고 관심을 많이 가져주는 선생님이 좋다는 내용을 자주 접한다. 그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따뜻한 마음은, 따뜻한 눈물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묘한 매력이 있다. 눈물이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는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성숙하게 한다. 슬픔도 힘이 된다.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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