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은 범죄행위 잘못과 함께
피고의 상황·반성 등도 고려한 결과
범죄자와 가족도 인권 배려 받아야

▲ 김주옥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절도 전과가 있는 20대 후반의 여성 피고인. 자신이 종업원으로 근무하던 찜질방, 편의점 등에서 10여 차례 현금을 훔친 공소사실로 기소되어 법정에 섰다. 깡마른 체구에 남루한 입성,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간혹 들더라도 눈길을 고정하지 못한다. 애정 결핍의 성장 과정, 켜켜이 쌓인 가난이 한 눈에 들어온다. 순순히 모든 범행을 자백하여 선고기일을 지정하려고 하니 국선변호인이 피해변제와 합의를 위해 한 기일 속행을 바란다고 말한다.

마음이 몹시 아프다. 수사기록과 변론 과정에서 알게 된 피고인의 가정환경 때문이다. 피고인이 중학교 때 부모는 함께 고기잡이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행방불명되었다. 가난한 할머니가 홀로 피고인과 남동생을 키워 왔고, 남매는 여태껏 변변한 직장도 없이 기초생활수급자인 여든이 넘은 할머니에 기대어 살고 있다. 합의금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할머니가 푼푼 모아 둔 쌈짓돈이거나 얼마 안 되는 사글세 보증금일 것이다. 피해 변제라고 해야 절도 피해자에서 피고인 할머니로의 피해 전가에 불과한 상황, 여기서 피고인이 다음 기일 합의서를 들고 나타나는지 여부에 따라 처벌 수위를 달리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합의하지 못할 경우 피해자는 당연히 엄벌을 요구하겠으나 이 경우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판결하는 것이 과연 옳은 처사일까?

살인, 강간과 같은 강력 사건이 벌어지면 범죄자의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기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사건 수사 단계부터 범행 수단이나 방법에 대한 자극적인 묘사, 피해자와 그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한 감성적 스토리가 전해져 대중은 모두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감정이입을 마친 상태에서 판결 선고를 기다린다. 이윽고 판결 선고 기사가 보도되면 인터넷 기사 댓글의 다수는 으레 낮은 선고 형량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판과 법관에 대한 비난으로 채워진다. ‘당신 딸이 당했어도 똑같이 판결할 거냐?’라는 비난의 댓글이 어김없이 공감 순위 상위권을 차지한다.

물론 피해자의 친족이거나 친족이었던 법관은 법률상 해당 사건 직무에서 배제된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피해자 측에 맡겨질 경우 사적 보복을 위한 가혹한 형벌의 위험이 크고, 상대방의 취약한 처지가 과도한 사익 추구의 기회로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좌제가 금지되는 헌법 아래에서 범죄자 가족의 인권 역시 중요하다. 판결에 의해 신상정보가 공개된 성범죄자의 자녀가 자살한 사례가 여러 건 있었다. 살인범과 강간범의 마스크가 벗겨지는 순간 그 가족의 정상적인 삶 역시 파괴된다. 범죄자의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길 것인지는 이러한 측면까지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 범죄자와 그 가족은 인권 보장의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의 강도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범죄자와 그 가족에 대한 인권 배려의 수준이야말로 사회 전체의 인권 수준을 가리키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보도된 판결 결과를 보고 곧바로 ‘범죄자의 천국’이라고 흥분하기 전에 판결에는 범죄 내용과 피해자의 사정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성장 환경이나 피고인에게 갑작스레 닥친 불운이 범행에 미친 영향, 그에게 딸린 식솔, 그리고 범행에 대한 피고인의 자책과 회한의 눈물까지 담겨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생각해 주기 바란다.

오늘도 피고인의 가족, 친구, 친지들의 탄원서가 판사의 책상에 올라온다. 우리도 언젠가 누군가를 위해 탄원서를 작성할 수 있다. 판사가 그것을 읽어보기를 원하는가? 판사가 피해자 뿐 아니라 피고인과 그 가족의 아픔에도 반응하기를 원하는가? 그런데 당신 자신과 가족, 친구, 친지의 사건에 대해서만 그러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모든 사건에 대해서 그러기를 원하는가?

김주옥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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