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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경상시론
[경상시론]실패돈되는 비보험 진료에만 몰리고
암등 중환자는 기피 불편한 현실
사명감 가진 의사가 존경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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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6  22: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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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상문 위앤장탑내과 원장·내과전문의

30대 초반의 남자가 고혈압 약을 타러 왔다. 간호사가 혈압을 재자고 하니 싫다 한다. 휴대폰으로 약 이름을 보여 준다. 혈압약, 갑상선약, 고지혈증약 등이 있다. 웬만하면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 하지만 처음 와서 갑상선약이나 고지혈증 약을 처방해 달라고 하면 꺼려진다. 환자의 상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과의사에게 처방전이란 영혼과 같은 것이다. 돈 몇 푼에 영혼을 파는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는 처방이 어렵다고 했다. “뭐 이런 병원이 다 있어!”하고 나간다. 내가 과민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돈 몇 푼에 모든 책임(부작용, 보험 삭감 등)을 지기는 싫었다.

과거 의사와 환자는 갑과 을의 관계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개원의에게 환자는 더 이상 을이 아니다. 병원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여기 아니면 갈데 없느냐는 것이 공통적인 생각이다. 환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대학병원의 경우는 다르다. 아직도 누가 입원하면 아는 의사에게 연락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중병에 걸리면 환자는 약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는 의사를 수소문한다. 어떤 기자의 말을 들었다. 기자의 부친이 암으로 모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완치는 어려운 상태였다. 항암치료의 고통이 심했다. 환자의 질문에 담당의사가 친절하게 답을 하지 않았다. 부친이 돌아가시고 기자가 특히 가슴아파한 것은 아버지가 담당의사 앞에서는 화도 내지도 못하고 비굴하다 싶을 정도의 저자세로 임하던 모습이었다.

의사는 환자에게 친절하고 정확한 진료를 하도록 훈련된 직업인이다. 사촌 누이가 위암 수술을 받았다. 진행된 상황이라 완치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수술 전 담당 의사를 바라보던 가족들의 시선은 “저 사람이 누이를 살려줄 의사구나!”하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누이는 완치되었다.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리면 환자나 환자 가족은 의사가 신과 같이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많은 의사들이 암수술이나 중환자 보기를 기피한다.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후로는 신생아 중환자실 근무를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억하고 있다. 사명감을 가진 의사들이 존경받아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수한 의료자원들이 미용성형을 비롯한 비보험 진료에 몰리고 있다.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전과 같지 않다. 과연 성공과 실패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실패는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 준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써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작가가 된 J. K. 롤링이 하버드대학 졸업식에서 한 축사의 일부다. 롤링은 바닥에서 일어난 사람이다. 딸 하나의 무일푼 이혼녀가 카페에서 눈치 보며 쓴 글이 해리포터다. 꼭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남들에게 실패한 인생처럼 보여도 된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가 좋으면 그만인데.

돈은 버는 것이 제 것이 아니고 쓰는 것이 제 것이다. 못난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 분수보다 못한 삶을 지향하면 행복이 온다. 불편함과 수고를 자처하면 행운이 온다. 이런 마음으로 살고자 한다. 누구나 인생 역전을 꿈꾼다. 그러나 인생 역전보다 인생의 여전함이 더 소중하다고 믿는다. 여전히 건강하게, 여전히 일할 수 있고, 여전히 먹을 수 있고, 여전히 음악을 듣고, 여전히 글을 쓰며, 여전히 저녁을 맞을 수 있다는 것. 이런 소소하고 일상적인 행복의 소중함을 느낀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실패한 인생이란 없다.

배상문 위앤장탑내과 원장·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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