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립사업 재추진 첫단추격인
정부 로드맵 수립용역 본격화
예타면제·특별법 쉽지 않아
불합리한 예타방식 개선 시급

울산의 숙원사업인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이하 국립산박) 건립사업 재추진의 첫 단추격인 정부의 ‘로드맵 수립 용역’이 본격화된다. 지역 정치권과 행정의 공조로 국립산박 건립의 불씨는 일단 살린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역여론의 압박에 못이겨 사업을 하는 ‘시늉’만 내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는데다 특별법 제정 방식이 아닌 기존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방식으로 재추진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시민적 역량결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시늉’ 우려…당위성 등 장벽 줄줄이

16일 울산시에 따르면 산업자원통상부는 ‘국립산박 로드맵 수립 용역’을 이달 중 착수한다. 산자부는 현재 용역 과업지시서를 마무리 짓고, 용역 기관을 검토하고 있다. 산하기관인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에 맡길 지, 제3의 기관에 의뢰할 지를 놓고 고심 중이다. 이 때문에 당초 지난달 착수키로 한 용역이 이달로 지연됐다.

국립산박이 지난해 8월 예타를 통과하지 못하고 무산되자 지역사회는 크게 반발했다.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울산남갑)과 울산시가 공조해 정부에 재추진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우여곡절 끝에 2018년 정부예산안 국회 심의에서 용역비 3억원이 확보돼 국립산박의 재추진 불씨가 살아났다.

용역은 △국립산박 사업의 필요성 △울산 건립의 당위성 △재추진 시 방법론 등 사업 전반에 대한 검토가 이뤄진다. 시는 국립산박 울산 건립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있지만, 용역이 요식행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자부의 반응은 미온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타면제 사실상 OUT, 특별법도 비관적

용역에서 재추진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넘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다. 우선 ‘재추진 방법론’이다. 용역에서는 예타면제사업, 특별법 제정 방식, 재예타 조사 등을 놓고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검토하지만 만만한 방안이 없다.

시는 예타면제사업으로 추진을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최근 접었다. 예타면제사업이 되려면 산자부와 국무총리실과의 협의를 거쳐 국무회의에서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지금까지 국무회의에서 국립산박 같은 단위사업을 면제해 준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특별법 제정 방안도 비관적 결과를 예상하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등 사례는 있지만, 정부가 울산시만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정치적 부담과 타 지자체의 형평성 문제로 현실화가 매우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불합리한 예타 방식 뜯어 고치지 않으면 ‘해보나 마나’

결국 예타조사를 다시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그러나 ‘도시의 인구규모’에 사업의 명운이 좌우되는 불합리한 정부의 예타 방식 탓에 이전처럼 예타의 벽을 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타는 전국의 1000가구를 무작위로 뽑아 ‘울산에 박물관을 건립하는데 드는 비용을 세금으로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전국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는 조건부가치측정법이다. 1000가구 중 울산은 전국인구의 2%인 고작 19가구만 배정돼 해보나마나한 설문조사가 됐다. 예타에서 B/C(비용대비 편익)가 0.16%대로 최악의 수준을 기록한 이유기도 하다.

당시 국립산박이 불합리한 예타의 대표적인 ‘희생양 사례’로 남기되면서 예타제도를 개선해야 하는 목소리가 비수도권 지자체를 중심으로 크게 일었다.

시는 질문 문구 수정과 함께 수도권의 비중을 줄이고, 울산과 인접한 도시를 권역으로 묶어 비중을 높혀 측정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것을 적극 요구할 방침이다.

한편 국립산박은 애초에 사업비 1조2000억원을 투입해 서울 용산지역 20만㎡에 최소 관람수요 300만명 규모(총면적 10만여㎡)의 세계 최대 규모로 지을 계획이었지만 우여곡절 끝 울산건립이 확정되면서 사업비가 1865억원으로 쪼그라드는 등 난항을 겪다 최종 무산됐다.

최창환기자 cchoi@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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