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에 봄이 왔다.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했다. 13개 항으로 구성된 판문점 선언은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립해왔던 과제들을 광범위하고도 전향적으로 담았다. 서명식 후 두 정상은 직접 발표식도 가졌다. 세계가 깜짝 놀랄만큼 파격적인 하루다. 두정상이 만나 판문점 선언이 나오기까지 걸린 것은 불과 8시간여. 한반도의 지정학뿐 아니라 냉전에 터 잡은 65년의 긴 겨울이 마침내 끝나고 단숨에 따뜻한 봄날이 찾아온 것이다. 한반도·동북아의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공존공영체제를 향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분명하다.

판문점 선언은 크게 세가닥으로 이루어졌다.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경제적 교류와 민간 교류는 물론 평화체제 구축까지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언급들이 담겼다.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변화가 예고됐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여부를 진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문장으로 담겼다. 과정을 남겨놓은 채 결론을 명시함으로써 북미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일정을 잡을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완전하다는 말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실질적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더 큰 비중을 갖는 대목은 연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이날 판문점 선언은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명시했다. 또 올해 종전 선언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체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나겠다는 구체적 계획도 밝혔다. 이는 비핵화가 전제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와 북한의 후속 비핵화 선언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날 남북정상회담에서 세계가 주목한 장면은 두 정상은 손을 마주잡고 군사분계선(MDL)을 넘나든 것이다.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라고 하자,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며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어 분단의 선 북쪽으로 넘어갔다. 시나리오 없이 즉흥적으로 연출된 이 장면은 세계 유일 분단국가의 군사분계선이 폭 50㎝, 높이 5㎝의 콘크리트 시설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한눈에 확인시켰다. 결국 남북관계의 진전은 손을 내미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제 경계를 넘었고 첫발을 내디뎠다.

문제는 돌발 변수에 흔들리지 않고 어떻게 새 길을 다지고 넓혀갈 수 있는냐 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근원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과감하면서도 통큰 합의라 해도 실행·실천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정치·군사적 문제로 숱하게 되풀이 된 그동안의 남북합의 불이행사례만 해도 그렇다. 신뢰를 잃으면 그 순간 항구적 평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봄날의 한바탕 꿈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행히 김정은 위원장이 ‘이행’을 강조하면서 적극적인 문제 해결의 의지를 나타냈다. 북미회담을 통해 비핵화의 구체적 일정을 제시할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상호신뢰라는 단단한 초석을 다져나가는데 필요한 작은 실천부터 조속히 이뤄졌으면 한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국민의 에너지를 어떻게 하나로 묶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우리끼리 분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과도한 흥분과 낙관을 경계하면서도 북한을 바라보는 습관적 의구심에 기반을 둔 무조건적인 비관론을 확산시켜서는 곤란하다. 민간교류 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활발한 경제교류가 한반도 평화에 절대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진다. 판문점 선언에 나타난 경제교류만 해도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 및 현대화가 명시됐다. 개성공단의 재개도 국회에서 재론될 것이 틀림없다. 이날 선언에는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기로 했다.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막무가내식 비난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저마다의 기대 수준에 따라 4·27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자칫 소모적인 논란으로 비화시키는 것 또한 성급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 정착, 남북관계 진전 등 3대 의제는 ‘가치’에 대한 문제가 아니리 우리의 ‘생존’에 대한 문제다. 핵 위협을 없애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국민 생명을 지키고 번영의 토대를 마련하는 우리 민족 공통의 목표임을 결코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