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는 울산 혁신도시에 자리 잡은 10개 공기업 중에서 ‘대표선수’로 꼽힌다. 정부는 공기업 지방이전 정책을 입안할 때 지역내 기존 산업과의 연관성 뿐 아니라 규모의 형평성도 중요 요건으로 삼았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목적이 동반된 혁신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울산의 대표선수였던 석유공사는 그에 걸맞게 사옥도 도심에 가까운 곳에 가장 크고 화려하게 지었다. 울산의 ‘랜드마크’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울산시민들의 기대도 컸다.

그러나 울산으로 정착한 지 4년차에 접어든 석유공사는 대표선수로서 소임을 다하기는커녕 계속되는 잡음으로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기업이 돼가고 있다. 석유공사는 울산혁신도시로 이전하기 전부터 해외자원개발사업의 부실로 부채가 16조8000억원에 달하는 등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기업이다. 그러나 국책사업을 수행하다가 빚어진 손실이므로 어렵지 않게 만회할 방안을 찾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고, 다양한 자구책을 제시하며 쇄신하는 모양새를 갖추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얄팍한 겉치레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공개된 감사원의 ‘공공기관 부동산 보유 관리 실태 감사보고서’는 석유공사가 지난 1월 재무구조개선을 이유로 임대조건부 방식으로 2200억원에 사옥을 매각했으나 이는 재무구조 개선책이 아니라 향후 15년간 585억원의 손실을 발생시키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밝혔다. 신사옥 보유세(63억원)와 공사채 상환시 이자비용 절감액(798억원)을 더한 금액이 861억원에 불과한데 5년간 임대료는 1446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분명 매각당시에도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담당직원들은 재무구조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부당하게 검토·보고하는 등 고의·중과실을 저지르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지난해에 주먹구구식으로 4명의 전문계약직을 ‘낙하산 채용’한 사실이 불거져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같은 방만하고 무책임한 경영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공기업으로서 우수 인력들이 대거 포진해 있으니 전문성과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인은 국민을, 지역주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함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들은 대부분 지역사회와 더불어 성장하겠다는 인식, 국민은 물론 가까운 곳에 있는 지역주민을 두려워하는 윤리의식을 갖추고 있다. 지난 4월 취임한 양수영 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석유공사가 민간 회사였다면 지금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책임지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국민 신뢰 회복이 구조조정만으로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우려가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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