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차장
베를린은 독특한 도시이다. 경제대국 독일의 수도인데다 350만명이 거주하는 유럽에서 보기 힘든 대도시인데 반해 소득 수준은 자국 내에서 낮은 편에 속하고, 그렇다고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마땅히 나은 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베를린도 반전이 있다. 요즘 가장 핫한 예술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예술가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도시 인구의 20%인 70만명이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할 정도니 도시 자체가 거대한 예술무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베를린은 어떻게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의 도시가 되었고, 그 중심에 있는 예술가들은 왜 베를린으로 오게 된 걸까.

예술가들에게 베를린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물가다. 창작공간이 필수인 이들에게 안정된 임대료는 생존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3개의 오페라하우스, 175개의 박물관과 미술관, 130여개의 극장, 그리고 수많은 사설 갤러리들까지. 그야말로 예술 인프라의 천국이다. 이것뿐인가? 베를린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옛 분단도시의 흔적 위에 이런 저런 외부 문화들이 섞여 마치 ‘잡탕’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결코 거북스럽진 않다. 오히려 이런 이질감들이 조화를 이뤄 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그 배경엔 기득권을 탈피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베를린만의 개방적인 도시문화가 숨어 있다.

이처럼 베를린은 예술가들을 위한 도시이다. 현재 예술의 도시라 불리는 세계 유수의 도시들도 과거에 예술가들이 몰려들던 곳이었다. 드뷔시, 모네 등과 같은 예술가들이 활동한 파리는 19세기 유럽예술의 중심지였으며, 베토벤부터 클림트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한 빈은 오랜 시간 유럽예술의 화수분 역할을 해왔다. 이와 같이 예술의 도시, 그 중심엔 예술가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할까? 예술가들을 위해 다양한 지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 주도로 이루어져 지역의 여건은 반영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거기다 중앙정부의 정책 또한 유행이 있다 보니 그것을 좇다보면 오롯이 예술가들에게 집중하기도 어렵다. 때때로 주객이 전도되어 예술가들에게 예술교육을 위한 강사로서의 역할을 더 요구하고 기대하기도 한다. 예술가들이 온전히 창작활동에 전념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에 주력하지 못한다면 결코 예술가라 칭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이러한 상황은 주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중앙정부의 획일화된 지원 정책에 예술가들의 활동 또한 제한되고 있다. 예술가들의 활동이 제한되면 예술작품은 그 생명을 잃게 된다. 지역마다 차별화된 예술지원 정책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예술의 도시와 관광의 도시를 구분하지 못한다. 단순히 공연장을 많이 짓고 유명작품을 연주한다고 해서 예술의 도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가 예술이 상품이 되는 관광의 도시다. 진정한 예술의 도시는 도시 곳곳에 예술가들의 흔적이 살아 숨 쉬어야 한다. 예술가가 없는 예술의 도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가의 도시는 있어도 예술의 도시는 없다. 이제 진정으로 예술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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