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가스 누출로 29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한화케미칼 울산2공장 사고를 계기로 화학물질 누출사고시 인근 주민이나 근로자들의 신속한 대피가 가능한 체계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대형 화학사고 발생 시 체계적인 대응 매뉴얼과 진화장비가 구축돼 있지만 울산을 비롯해 국내는 아직까지 대비책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신속한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재의 매뉴얼부터 현실에 맞도록 고치고, 화학사고 발생의 위험성과 효율적인 초기 대응을 가능케하는 기술개발에 나서야 할 것이다.

울산 남부소방서와 남구청, 한화케미칼 등에 따르면 염소가스 누출사고는 17일 오전 9시58분 발생했다. 염소가스는 소량을 흡입해도 눈, 코, 목의 점막을 파괴하고, 많이 마시게 되면 폐에 염증을 일으켜 호흡 곤란이 나타나는 유독 물질이다. 염소가스 누출은 사고 발생 45분만에 차단됐으나 공장 주변에 퍼진 염소가스 악취로 인근 근로자와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이 사고로 공장 주변에서 제초 작업을 하던 작업자와 근로자 등 29명이 염소가스를 마신 뒤 콧물을 흘리면서 호흡 곤란 등을 호소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문제는 현재의 메뉴얼대로라면 신속한 대피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고 당시 인근 주민이나 근로자들을 대피시켜야 하는 주체는 남구청이지만 사고 발생 당시 남구청은 연락관 2명을 약 3.9㎞ 떨어진 현장으로 급파하는데 그쳤을뿐 염소가스 누출차단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제대로 된 대응조치를 할 수 없었다. 긴급차량을 타고 출동하는 소방의 경우 사이렌을 울리고 주위 운전자들의 양보 등을 통해 빠르게 현장에 도착할 수 있지만 연락관의 경우 소방에 비해 늦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고 현장과 약 1.3㎞ 떨어져 신속한 출동이 가능했던 야음장생포동 행정복지센터의 경우 대피 등을 결정할 권한이 부여돼 있지 않은데다 전문성도 부족하다보니 제대로 된 대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염소가스 누출차단 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대피해야 한다거나 실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말이 없었다”며 “만약 누출량이 많았거나 불산 등과 같은 독성 물질이었다면 인근 주민이나 근로자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현장 근로자의 말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오는 6월까지 최첨단 화학물질 측정분석시스템을 도입, 앞으로 화학사고가 발생할 경우 실시간으로 사고지점을 조사해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재발방지대책을 세우기로 한 것과 연계해 화재·폭발·누출 등의 형태로 순식간에 대기로 확산, 인체에 치명적 피해를 입히고 많은 후유증을 유발하는 화학사고에 대비한 울산의 대응 시스템에 대한 전면 재점검까지 이뤄질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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