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빛나래 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상처받은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상처라는 게 워낙 다양해서 변화와 성장을 유발하는 긍정적인 스트레스도 있고, 사람을 무너뜨리고 와해시킬 정도의 트라우마도 있다.

정신과 의사라는 입장에서는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마저도 사람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믿음으로 환자가 고통스러운 기억에 힘들어하면서도 서서히 일으키는 변화를 기다리게 된다. 오늘은 마찬가지로 이 과정을 함께하게 되는 환자의 가족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상처받은 사람의 가족은 보통 함께 상처받는다. 문제는 기다림의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환자가 빨리 변하지 못함에 답답해하는 가족들을 많이 보게 된다.

환자가 평소 해왔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공감하기 보다는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는 모습으로 얼른 돌아와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면, 상처받은 사람들은 그 상처를 주변 사람들과 특히 가족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기다려주지 않고 다그친다고 호소한다. 뭐라 하지 않아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 미안하여 자책하는데, 가장 중요한 관계 안에서도 비난받는 느낌이 들면 환자는 배로 힘들어한다.

환자와 가족의 고통 모두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나에게 상처를 안긴 그 사건이나 사람 뿐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 나만큼 다치지 않은 주변 사람, 나 빼고는 그저 잘 돌아가는 것만 같은 세상마저도 원망스럽다. 주변 사람들은 내 마음을 절대로 알 수가 없는데 함부로 말하고 바라보는 것만 같고, 정말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절망스럽다.

가족의 눈으로 보기엔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아무것도 못하는지, 사람을 피하고 일까지 내려놓는 이유가 뭔지 이해가지 않는다. 왜 상처는 다른데서 받고 가족인 나에게 이렇게 예민하게 굴고 화를 내는지도 납듭하기 어렵다. 때문에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극복을 강요하기도 하고, 심할 때는 치료를 방해하는 태도를 취하여 문제가 되기도 한다.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적절한 치료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고통스런 기억을 정리하여 언어화 하려면 일관되고 지지적인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다양한 감정반응이 공유되는 가운데 증상으로 인한 고통이 심하다면 약물치료가 동반돼야 한다. 분명 이 과정은 순탄치 않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상처받은 분들과 그 가족들이 치료환경을 찾고 활용하는 용기를 통해 각자의 고통을 줄이고 도움받는 일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빛나래 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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