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최고의 피서는 예술에 '몰입'하는 것

더운날 음악으로 피서하기

감성 몰입력 키울 최적조건

▲ 조희창 음악평론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잡지사나 방송사에서 꼭 들어오는 주문이 있다. ‘베스트 오브 서머 뮤직’ ‘더위를 잊어버릴 클래식 10선’ ‘음악으로 피서하기’ 등의 제목으로 글을 부탁한다는 것이다. 클래식에는 계절을 담은 음악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 중에 몇 곡 추려서 쓰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국민 클래식 1호’라고 불리는 비발디의 ‘사계’ 중의 여름,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사계’ 중에 나오는 여름 부분, 피아졸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중 여름, 멘델스존의 연극용 음악인 ‘한 여름 밤의 꿈’, 베를리오즈의 연가곡 ‘여름밤’, 거슈윈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 중에 나오는 ‘서머 타임’ 같은 곡을 나열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곡을 들으면 좀 시원해질까? 음악적 맛과 내용을 알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비발디의 ‘여름’ 3악장은 바이올린의 질주가 정말 짜릿하다.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음악이 쏟아지는 느낌이다. 하이든 여름의 폭풍우 부분도 마찬가지다. 베를리오즈의 여름밤에 나오는 ‘장미의 정령’도 몽환적인 가사에 취해서 더위를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음악의 맛을 느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더위든 추위든 의식적인 방법으로 물리적인 문제를 피해가려면 그걸 잊어버릴 만큼 정신적으로 빠져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언가에 정신적으로 빠져드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 음악적인 몰입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클래식음악을 한두 번 들어보고선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여행이든 연애든 뭐든 한두 번만 해본 사람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음악의 신은 참으로 오묘해서 불현듯 스치는 짧은 선율 하나로도 망연자실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도무지 마음을 움직여 주지 않아 멀뚱멀뚱할 때도 있다. 그래서 뮤즈와 접신하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한다.

내가 살고 있는 통도사 언저리에는 화두(話頭) 한 개를 놓고서 한 계절 내내 씨름하는 스님들이 많다. 무언가를 부여잡고 몰입할 줄 아는 것은 정말 큰 능력이다. 나이가 들면 시력, 청력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몰입 능력도 자꾸 떨어진다. 그러니 근력 운동하듯이 감성적, 지성적 몰입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하는데, 그에 관한 한 클래식 듣기만큼 좋은 훈련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이 불볕더위에 돌아다녀봤자 딱히 신통한 피서법이 별로 없다. 발품도 많이 들고 그에 따라 돈도 많이 든다. 차라리 그 돈으로 괜찮은 헤드폰을 하나 구입한다. 인터넷에는 이미 음악 자료들이 넘쳐난다. ‘가성비’로만 따져도 이만한 피서가 없다.

자료를 뒤지고 듣기를 훈련하면 그 순간이 온다. 뮤즈의 마법 지팡이가 갑자기 당신의 가슴을 터치한다. 순간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수밖에 없게 된다. 팔에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곤두선다. 그 벅찬 음악적 엑스터시를 경험하면 알게 된다. 최고의 피서 중 하나는 예술에 몰입하는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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