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일반적으로 적절한 치료받은
정신질환자 범죄율은 낮지만
치료거부 환자 강제치료 못해
정신병은 보호자의 정보제공이 중요
병 키워 위험 닥치면 모든사람 위험
선진국은 독립기구서 환자입원 결정
환자 보호하고 인권침해 우려 해소
치료기회 박탈이 오히려 인권침해

최근 정신질환자, 특히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비극적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사건이 워낙 빈번한데다 뾰족한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하니 이제는 아예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언론도 정부도 그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일 경북 영양의 주택가에서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중 한 명이 조현병 환자 백씨(47)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백씨를 진정시키려고 애쓰다가 제압을 시도했지만 그가 난데없이 뒷마당에서 흉기를 들고 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백씨는 지난달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약 복용을 중단하였고, 기초생활 수급자인 팔순 노모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티즌들은 순직한 경찰관을 애도하는 한편, 위험한 정신질환자를 영구격리하라는 등 두려움과 분노에 찬 댓글을 올렸다. 조현병은 예전에 정신분열병으로 불리다가 의학적으로 정신의 분열도 아니고 어감도 나빠서 2011년에 개명되었는데, 환자들의 범죄 뉴스가 반복되면서 도로 위험하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졌다. 조현병으로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는 증상이 남아서 불편을 겪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가 학생, 주부, 근로자, 경영자, 연구자, 공무원 등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간다. 이번과 같은 사건을 접할 때마다 환자들은 마음이 철렁한다. “모두들 조현병을 두려워하고 피하니까 친한 사람에게도 자신의 질병이 알려질까 걱정돼요. 다른 환자들도 모두 치료를 잘 받으면 좋겠어요.”

언론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기 위해 이들의 범죄율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대검찰청에서 집계해 발간하는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전체 범죄자 수는 약 200만명, 이 중 정신질환자는 8300여명으로 약 0.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중앙일보 7월10일자 보도) 이 수치는 맞지만 교통사고와 사기 등 모든 범죄를 포함한 것이라서 이번 사건과는 거리가 있다. 같은 자료에 의하면 2016년에는 총 948건의 살인 범죄(미수 포함)가 있었으며 그 중 정신장애를 가진 범죄자는 73명(8.5%)으로 적지 않다. 총 살인 건수가 비슷했던 1999년의 31명에 비해서도 두 배 이상 늘었다. 일반적으로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의 범죄율은 낮다고 알려져 있다. 단, 적절한 치료를 받을 때에 그렇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병을 깨닫지 못하고 치료를 거부하는 조현병 환자는 치료를 시작할 방법이 거의 없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번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백씨가 난동을 부리는 상황에 이르기 전 경찰에 도움을 청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도 경찰의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 이는 경찰의 책임이 아니다. 법의 규정 때문이다. 정신건강복지법에 의하면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자타해 위험)이 큰 사람”을 발견하여 “상황이 매우 급박할 경우”에만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법에 명시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경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최근 어느 정신과 의사의 경험담은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치료하던 환자가 망상이 심해져서 한밤중에 도심 길가에서 혼잣말을 하며 앉아 있었다. 따라온 보호자는 경찰에 연락해서 환자를 응급실에 이송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을 지킬 뿐 이송할 수 없다고 한다. 자타해 위험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보호자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담당 의사가 현장에 도착해서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였으나 경찰은 요지부동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다가가 설득을 시도하자 환자는 의사를 걷어찼다. 그제야 경찰은 “타인을 해할 위험”을 확인하였다며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였다. 경찰에게 융통성 있는 판단을 주문하기도 어렵다. 아무리 경직되고 비현실적인 법이라도 일단 문제가 생기면 법대로 따지고 처벌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작년에 경찰청은 자타해 위험을 일선 경찰이 판단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개발하였으나 현실성이 없어 취소한 바 있다. 정신병의 특성상 환자는 대답을 피하기 일쑤라서 설문지보다는 보호자로부터 얻는 정보가 중요하다. 가족의 진술을 중요시한다면 혹시 가족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구성원을 강제입원시킬 우려는 없을까? 선진국에서는 입원 초기에 독립된 기구의 정신과 의사나 판사가 직접 환자를 평가하여 판정함으로써 인권침해를 최소화한다.

인권 보호를 위해 자유의사를 존중하더라도 정신질환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환자가 현실 판단 능력을 상실하고 입원 외에는 다른 치료방법이 없는데도 단지 급박한 자타해 위험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하지 않고 가족에 맡겨두는 것이야말로 인권침해다. 병을 키워서 위험이 닥쳐야 치료 기회가 생긴다니 환자도, 가족도, 의사도, 경찰도, 국민도 모두 위험하다.

지금도 정신질환자의 가족들 중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이 변하고 망상이 굳어지며 인격이 황폐화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백씨가 증상이 악화되는 동안 팔순 노모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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