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계엄 검토 문건 사태 맞물려…권력기관 개혁에 다시 고삐

全직원에 생중계 연설 “정권에 충성 요구 않을 것”…“목표 제도화” 입법 강조
文대통령, 과거 정부 국정원과 악연 주목…“남북정상회담 주역” 격려도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취임 후 첫 국가정보원 업무보고에서 내세운 메시지의 핵심은 국정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의 탈정치화로 요약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정원 내곡동 청사에서 4시간가량에 걸쳐 진행된 업무보고 도중, 국정원 모든 직원이 시청하는 가운데 생중계 연설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여러분에게 분명히 약속한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며 “결코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 정권에 충성할 것도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과거 권력기관 정치개입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이전 정부의 국정원과 ‘악연’을 쌓아왔다는 점에서 이날 메시지가 더욱 주목받았다.

문 대통령이 야당 대선후보로 나선 2012년 대선에서는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의 댓글조작이 이뤄졌다는 점이 드러났다. 

2013년 국정원이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일부를 유출했을 때에는 당시 야당 의원이었던 문 대통령이 “NLL(북방한계선) 문제에 관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입장이 북한과 같은 것이었다고 드러나면 (제가) 정치를 그만두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다”며 당시 국정원에 맞선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국정원을 정치로 오염시키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언급한 것에는 권력기관 정치개입의 부작용에 대한 오랜 문제의식이 녹아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대통령의 선의에만 맡길 수는 없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정원의 위상이 달라지지 않도록 우리의 목표를 제도화해야 한다”며 “국정원법 개정안이 연내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라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또 “조직과 문화를 혁신하는 개혁은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훌륭하게 개혁을 하는 여러분에게 고맙다는 박수를 보낸다”면서 앞으로도 국정원 개혁에 매진해 달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메시지에는 문재인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지난 1년간의 적폐청산 및 사회개혁 성과를 되짚어볼 시점이라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정농단 게이트’를 비롯한 사회 적폐를 바로잡기 위한 특별조사기구 설치를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에 따라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 국정원 산하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설치했다.

TF는 이후 이명박정부 시절 국정원의 댓글조작 등 선거개입 의혹 사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발췌 보고서 유출 사건, 박근혜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의 진상을 조사해 검찰 및 담당 부처에 결과를 전달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권력기관들이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개혁에 다시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인식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 국군 기무사령부가 작년 3월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군과 권력기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시점에서, 권력기관 개혁의 동력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한편 문 대통령은 국정원의 변화 노력을 높게 평가하면서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는 모습도 보였다.

문 대통령은 특히 서훈 국정원장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숨은 공신’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점을 고려, “여러분의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 됐다”며 “’적폐의 본산‘으로 비판받던 기관에서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마친 후에는 서 원장과 만찬을 함께하면서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격려에는 이후 계속될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국정원이 최고의 대외안보·정보기관으로서 역할을 해달라는 당부도 담겨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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