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여유로움과 디테일에 대하여-독일

▲ 독일여행 중 도시의 허파인 도심 정원 곳곳에서 노인들을 만났다. 그들의 표정에는 오랜 전통, 문화 환경, 안정적인 사회보장 아래 느림의 삶을 즐기는 여유로움이 담겨 있었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고딕양식
600년에 걸쳐 건립된 쾰른 대성당
정교한 조각·웅장한 크기에 감탄
2차대전때 훼손…70년째 복원공사
베를린장벽 1.3㎞ 활용한 갤러리
냉전의 아픔 간직 메모리얼 공원
우리와 다르지만 틀리지 않은 삶
우리가 추구해야할 이상향일지도

8월 말~9월 초 유럽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11일 동안 자동차로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그로 이동해 잠시 머문 뒤, 다시 독일로 들어 와 로덴버그, 뷔르츠부르크, 에르푸르트, 포츠담, 베를린, 뒤셀도르프, 뒤스부르그, 퀼른, 그리고 다시 프랑크프루트까지 약 3000㎞를 달리는 루트였다.

본격적으로 해외여행을 다닌 지 어느덧 10년이 흘러간다. 그럼에도 이번과 같은 ‘유럽’ 여행은 처음이나 다름없다. 유럽에 있는 나라를 여행한 적은 그리스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아테네와 산토리니 섬이 전부였던지라 ‘유럽’다운 ‘유럽’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새로운 기대감이 들떴다. 사람들이 유럽에 열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 쾰른, 베를린, 로덴부르크, 뷔르츠부르크 등에서 만난 독일인의 삶의 포즈들.

이번 여행에는 다른 목적(독일의 정원을 둘러보는 것)이 있었지만 독일에 대해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여행을 통해서 바로 잡아진다. 이것이 여행의 이유이기도 하다. 책이나 인터넷 TV로만 습득된 정보는 직접 부딪혀 경험한 뒤에야 나의 지식으로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독일의 첫 느낌은 안정과 여유, 그리고 고요함이었다. 선진국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오래된 그들의 전통과 문화는 이미 완벽하고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여유로웠다. 간혹 너무나 안정적이다 못해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고요하기도 했다. 변하지 않는 도시의 시청 건물은 오래되어 낡고 빛이 바랬다.

▲ 쾰른, 베를린, 로덴부르크, 뷔르츠부르크 등에서 만난 독일인의 삶의 포즈들.

그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그들 자체가 독일인 듯 느껴졌다. 그들 대부분은 멋을 부리지 않은, 단정하고 검소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도심 곳곳의 숲 속 벤치나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내가 떠나온 곳과는 다른, 느린 세상이었다. 한국에서는 답답해서 못 견딜 그 장면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쾰른 대성당에 이르렀다. 신을 향한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돔은 유럽에서 두번 째,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고딕양식이다. 13세기부터 지어진 이 건물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완공됐다. 장장 600년간 만들어진 이 곳에서 내가 감탄한 것은 그 웅장한 크기보다 구석구석 새겨진 디테일이었다.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조각과 조형적인 섬세함에 감탄이 새나왔다. 더 놀라운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폭격으로 부서져버린 이 건물의 복원과정이다. 부서진 건물의 파편을 하나하나 발굴해 아직까지도 복원공사가 진행된다. 600년의 세월동안 만들어진 역사는 다시 70년이 넘도록 섬세함을 그대로 살려내는 작업 중이다.

다음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 도심 숲이 도시면적의 48%를 차지하고 있었다. 베를린의 거리는 조용하고 한적하지만 관광지에는 어김없이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 쾰른, 베를린, 로덴부르크, 뷔르츠부르크 등에서 만난 독일인의 삶의 포즈들.

그 중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는 슈프레 강변 1.3㎞의 베를린 장벽 일부를 일자형 야외 갤러리로 만든 곳이다. 그래피티 형태의 여러 작품 중 단연 눈길을 모은 건 ‘키스’(KISS)였다. 1990년 세계 각국 예술가들이 모여 105개의 작품을 탄생시킨 이 곳에서 단연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사연 많은 이 그림은 한때 훼손되었다가 다시 복원됐다고 한다.

체크 포인트 찰리에 들러 냉전시대의 아픔을 만난 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공원으로 향했다. 그 곳엔 각기 다른 너비와 높이를 가진 직사각형 콘크리트 석비들이 묵묵히 서 있었다. 모두 2711개에 이른다. 석비 무더기들은 학살당한 유대인을 의미한다. 그 사이를 거닐면 누구라도 역사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한낱 건축물일지 모를 석비 무더기에서 과거의 아픔은 육중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미래와 화해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 쾰른, 베를린, 로덴부르크, 뷔르츠부르크 등에서 만난 독일인의 삶의 포즈들.

역사 속에서 변혁의 끝을 경험하였기 때문인지 독일인들은 무척 검소했다. 그렇지만 여유있고 평온한 일상을 보여줬다. 그 사회가 얼마나 안정돼 있는지를 보려면 노인들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연금만으로도 충분하게 생활하는 노인들이 많다. 독일의 분구원(kleingarten)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쟁을 겪으면서 독일은 식량을 자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구원 운동을 펼쳤다. 이후 생산적인 역할은 줄어들고 시민들에게 녹지를 만들어 도시의 공원녹지 확충, 휴식 공간 활용, 취미와 여가생활 공간으로 정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 쾰른, 베를린, 로덴부르크, 뷔르츠부르크 등에서 만난 독일인의 삶의 포즈들.

독일 정원아트페어나 박람회를 둘러보면 자신의 정원을 직접 가꾸기 위해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여유로운 노년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도 들지만, 독일의 경제 상황을 지켜보면 어쩌면 이들이 마지막으로 여유를 즐기는 세대가 아닐까 했다.

이에 반해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지울 수 없었나 보다. 복지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짊어지게 될 세금과 책임에 대한 부담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삶의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도 같이 살펴보게 됐다. 여행은 이렇게 세상을 읽는 ‘생각의 눈’을 키워주는 것 같다.

독일의 첫인상은 버려진 담배꽁초와 아우토반에서의 격렬한 운전때문에 썩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우리와 다르지만 틀리지 않은 삶을 보여줬다. 어쩌면 우리가 배우고 달려가야 곳일지도 모르겠다.

▲ 안남용 사진가, 다큐멘터리작가

안남용 사진가, 다큐멘터리작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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