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울산형 열린 시립대학’ 설립 제안한 임진혁 포스텍 교수

▲ 임진혁 포스텍 교수는 “열린대학은 기존 대학과는 다른 새 교육모델을 갖춘 대학으로 4차산업혁명시대를 이끌 유능한 인력을 양성해서 신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무크와 플립드러닝 혼합형 교육
온라인으로 자기주도적 학습하고
학교에선 수준따라 응용능력 배양

4차산업혁명시대 혁신적 대학 필요
외지로 나가는 인재들 수용하고
베이비부머들의 평생교육 담당할것

기존 대학이 ‘코스요리’라면
열린대학은 ‘뷔페식’에 비유
누구에게나 입학자격 제공되고
마음대로 수업 선택할 수 있어

울산에서 다시 대학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울산형 열린 시립대학’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으로 연구용역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울산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가 연구용역 예산을 삭감하는 바람에 재검토가 불가피해졌으나 지역사회에 대학 설립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한편으론 전국적으로 대학정원을 줄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새로운 대학 설립의 당위성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왜 울산에 새로운 대학을 설립해야 하는지, ‘울산형 열린 시립대학’이 기존 대학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대학 설립을 제안한 임진혁 포스텍 교수를 이슈인터뷰에 초대했다.

△대학이 포화상태다. 새로운 대학 설립에 대해 여론의 호응이나 정부의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다. 시립대학을 설립해야 하는 이유는.

“2009년 국립대학인 UNIST(울산과학기술원)가 개교했다. 유니스트는 10년도 안 돼 전국 명문대학으로 성장했다. 울산의 자랑거리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 고교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외지 대학으로 진학해야 하는 실정이다. 일자리가 부족해 젊은이들이 빠져 나가고 인구가 줄어드는 등 사회적으로도 새로운 요인이 생겼다. 베이비부머들의 평생교육에 대한 요구를 수용할 교육기관도 필요해졌다. 열린대학은 기존 대학과는 다른 새로운 교육모델을 갖춘 대학을 말한다. 4차산업혁명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유능한 인력을 양성해서 신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점에서 새로운 교육모델이라고 하나.

“누구에게나 입학자격이 주어지고, 수업도 학생이 선택해서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말 그대로 열린대학이다. 물론 입학시험은 없다. 고등학교 졸업생 뿐 아니라 지식의 반감기(半減期, half-life)가 점점 짧아짐에 따라 새로운 학습이 절실해진 재직자와 경력단절자 등 누구나 학생이 될 수 있다. 기존 대학에서는 입학 후 2년 혹은 4년 과정을 거쳐야 졸업하고 학위를 받는다. 열린대학은 특정한 역량을 기준으로 5개 강좌를 묶음으로 하는 나노디그리(Nano-degree) 모듈 중심으로 학사가 운영된다. 한 역량 분야의 강좌를 이수하면 그에 대한 나노디그리를 받게 되는 것이다.”

△나노디그리 모듈 중심의 학사운영이란.

“미국의 무크(MOOC 온라인 공개 강좌) 기업 유다시티(Udacity)의 학습방법이다. 나노(Nano)는 학습내용의 세분화에 따른 학습기간의 단기화를 의미하고 디그리(degree)는 인증 또는 학위를 말한다. 필요와 적성에 따라 얼마든지 선택을 바꾸어가며 학습할 수 있다. 기존 대학이 ‘코스요리’라면 열린대학은 ‘뷔페식’이라고 할 수 있다. 4개의 나노디그리를 취득하면 2년제 대학의 전문학사증을 준다.”

△그러면 온라인대학인가.

“아니다. 열린디지털대학이라는 언론보도는 잘못됐다. 열린대학은 무크와 플립드러닝(Flipped Learning 거꾸로학습)의 혼합형이다. 학생이 미리 무크로 지식을 습득하고 학교의 수업시간에는 플립드 러닝으로 심화된 학습활동을 하는 것이다. 수많은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할 수 있지만 자기 수준에 따라 DIY(Do it yourself) 즉,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다. 학생 개개인의 역량에 맞춰 가르치는 역량기반의 교육으로 학생들은 물론 기업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다.”

△기존 대학들의 교수법을 개선해나가면 되지 않나.

“기존의 2G핸드폰을 고친다고 스마트폰이 되지는 않는다. 기존 대학은 산업화시대에 맞추어진 대학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려면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 유니스트에 재직할 때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고 성과도 있었다. 포스텍에서도 이런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화가 안되면 지속성이 없다. 닫힌 교육의 한계다. ‘아는 것이 힘’인 시대는 지났다. 단순한 지식은 널려 있다. 수업을 들었다고 점수를 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할 수 있느냐를 증명하는 역량기반 교육으로, 자기주도학습을 통해 응용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으로, 완전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열린대학은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사이버대학이 아니라면 캠퍼스가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대학 설립 비용이 만만찮을 것이다.

“설립 비용은 기존 대학의 3분의 1정도면 충분하다. 대학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력 비용이 매우 적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수에게 요구하는 기능은 연구(지식)와 교수(전달) 두 가지다. 이 두 기능을 나눔으로써 비용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고도의 지식을 가진 교수의 강의는 온라인(MOOC)으로 가져올 것이므로 아웃소싱이 가능하다. 학교에서는 잘 가르치는 교수를 두어 플립드러닝을 수행하면 된다. 무크는 이미 미국에서 2012년부터 시작해 콘텐츠가 많다. 우리나라 교육부도 2015년부터 평생교육진흥원을 통해 K-MOOC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좋은 강의를 선별하고 전달기능이 빼어난 교수를 모시는 등의 매니지먼트가 중요하다.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하고 학습능력을 체크할 수 있는 플랫폼도 필요하다. 이런 플랫폼은 개발돼 있다.”

△비슷한 성공 사례가 있나.

“2013년 개교한 프랑스의 ‘에콜42’와 비슷하다. ‘에콜42’는 즉시 투입이 가능한 실무형 IT 인재를 길러내는 혁신 학교다. 프로그래밍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 학습연구팀이 학생들에게 수십 단계로 구성된 프로젝트 과제를 내준다.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학교가 제시한 프로그래밍 과제를 스스로 수행하면서 3년 과정을 마쳐야 한다. 학교엔 1000여대의 컴퓨터가 깔린 학습장이 있다. 모르는 게 나타나면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그룹 스터디를 함께하는 동료 학생들끼리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매년 5만명 이상이 지원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100% 취업 신화’로 명성을 쌓고 있다.”

△4차산업혁명을 겨냥한 이공계 대학이라면, 외지로 나가는 많은 학생들을 수용하기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4차산업혁명에 필요한 인재는 이과와 문과의 이분법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공계에선 컴퓨터 공학을 기반하는 하드웨어·소프웨어 분야, 수학 및 통계학을 기반으로 하는 계량적 모델링 분야, 그리고 경영학 등 크게 3가지 전통적인 학문분야가 융합된다. 철학 문학 역사 등 인문학 분야는 대학교육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영국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와 같은 인생학 모듈도 있다. 성공, 행복, 관계, 죽음 등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나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울산지역학’ 강의도 있을 것이다.”

△갈 길이 멀다. 열린시립대학 연구용역을 위한 예산이 시의회 상임위에서 삭감됐다.

“대학 설립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열린대학이 울산뿐만 아니라 한국의 새로운 교육모델을 제시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도록 잘 진행됐으면 한다. 송철호 시장이 시립대학교의 부지에 여타 교육기관 혹은 학습공동체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유 캠퍼스 개념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전국에서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혁신적 교육기관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 임진혁 교수

▶임진혁 교수는
-현 포항공과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교육혁신센터 특임교수·경영정보학 박사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1975년)
-미국 하와이주립대 석사(1983년)
-미국 네브라스카주립대 박사(1986년)
-전 유니스트 경영학부 정교수, 교수학습센터장, 학술정보처장
-전 미국 뉴올리언즈대학교 경영대학 정교수
-번역서 <당신의 수업을 뒤집어라(2013년)> 펴냄
-논문 ‘아셈교육장관회의를 통해 본 우리나라 교육현황과 방향, 대학교육’(2017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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