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일로 자치단체장들이 모두 취임 100일을 맞는다. 송철호 시장을 비롯한 구청장·군수는 한결같이 시간을 쪼개 쓸만큼 바쁘게 보냈다고 한다. 특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무언가 일을 하다보면 퇴근 무렵에는 며칠이 지난 것 같다”는 송시장의 말에서 하루하루 얼마나 많은 일들이 그를 스쳐갔을지 짐작된다. 그래서 “하루는 엄청나게 길었고 100일은 순식간이었다”는 말에도 공감이 간다.

1460일이나 되는 4년의 임기에서 100일은 성과를 논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 때문인지 성과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수의 단체장이 ‘의전 간소화’를 꼽았다. ‘탈권위’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의전간소화는 20여년만에 바뀐 진보 정권의 선명성을 드러내는 간편한 방법의 하나이기도 하고, 직접 수많은 행사에 참석해보면서 필요성을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분야이기도 했을 것이다.

의전(儀典)은 행사의 취지와 목적 달성을 위해 정해놓은 합리적인 형식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 의전은 본 행사의 목적이나 취지와는 별개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을 앞자리에 앉히고 지위에 따른 순서대로 기념사를 하게 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변질돼 있다. 의전 간소화가 단체장 100일의 성과로 꼽힐 만큼 ‘의전을 위한 의전’이 돼버린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의전으로 인한 예산과 행정력 낭비는 적지 않다. 의전 간소화가 얼마나 실속있게 진행되고 있는지, 단지 무늬만 바뀐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단체장이 취임식을 안한다고, 단상 위에 있던 자리가 아래로 내려졌다고, 앞자리가 뒷자리로 바뀌었다고 해서 의전이 간소해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반드시 필요한 의전을 생략하는 것도 안될 일이며, 드러나지 않게 챙기느라 더 복잡하고 더 비합리적으로 바뀐 것을 간소화라고 해서도 안된다.

사실상 의전 간소화는 행정력이 줄어드는 것도 예산이 절약되는 것도 아니다. 공연히 ‘작은’ 의전으로 인해 ‘섭섭한’ 참석자가 많아지면서 주최측만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선거가 다가오면 선출직들의 얼굴을 알리는 중요한 도구로 전락하면서 결국 ‘되돌이’가 되기도 한다. 여태 그래 왔다.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의전 간소화가 아니라 ‘기념식 없애기’가 필요하다. 기념식 자체가 목적인 행사가 아닌, 각종 문화행사에서는 기념식만 없애도 예산과 행정력을 대폭 아낄 수 있다. 단체장이나 의원들이 행사를 즐기는 관람객으로써, 예산의 효율성을 따지는 평가자로써, 스스로의 역할과 필요에 따라 행사중에 자발적으로 참관하겠다고 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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