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太和江百里 : 12.감입곡류하천 대곡천과 반구대(중)

▲ 반구대 북쪽 사면은 물길과 암벽의 힘겨루기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다.

수십억년 동안 물살과 힘겨루기한 결과
집청정 앞 반구대 절벽 바위면 맨질맨질
반구·포은대·옥천선동·학소대 글자부터
부윤 박종경, 울산부사 임성운·유한식등
고위 관리와 선비들 이름도 새겨져 있어

감입곡류(嵌入曲流)가 딱딱한 암벽을 만나면 할 수 없이 물길을 비튼다. 제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하지만 수십억년 바위벽을 이겨내지는 못하는 법. 물이 직진의 힘을 빌어 암석을 밀어내 보지만 바위 표면을 할퀸 자국만 남길 뿐 모든 것은 헛일이다. 물길이 바위벽에 부딪혀서 바위와 힘겨루기를 한판 한 뒤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는 지점을 ‘공격사면’이라고 한다.

반구대 북쪽 사면은 수십억년의 힘겨루기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다. 집청정 앞 반구대 공격사면은 그래서 유난히 맨들맨들해진 바위표면이 많다. 하류 쪽에 있는 세계적인 바위그림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절벽도 감입곡류의 공격사면 중 하나다. 이런 공격사면은 자연이 인간들에게 선물한 하나의 고귀한 아틀리에(atelier)이자 화판(畵板)이다.

▲ 반구대 절벽에 새겨져 있는 ‘盤龜(반구)’ 글자와 학그림

현재 반구대 절벽에는 ‘盤龜(반구)’라는 큰 글자와 ‘圃隱臺(포은대)’ ‘玉泉仙洞(옥천선동)’ ‘鶴巢臺(학소대)’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대부분 고위 관리와 선비들이다. 관찰사 조석우 유애비(遺愛碑)를 비롯해 부윤 박종경, 울산부사 임성운·유한식·민수현, 현감 백치언·이제원·이규석·채학영·홍조응·이광헌·이노준·윤수·오현·박기화·오호석·손영모·이채·홍용보 등이 있다.

절벽에 새겨진 ‘盤龜(반구)’라는 글자는 반구대(盤龜臺)를 말하는 것으로, 반구산의 모양이 마치 엎드려 있는 거북이(盤龜)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 곳은 빼어난 풍광으로 오래 전부터 이름이 났던 곳이다. <헌산지> ‘형승’조를 보면 반구대를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 ‘圃隱臺(포은대)’ 글자

“반구산은 고을 북쪽 18리에 있다. 주맥은 고헌산의 남쪽 기슭으로부터 온다. 그 산세가 날랜 말이 마음대로 달리는 것 같고, 칼과 창이 벌여 있는 듯하다. 산맥이 다하는 곳에서 산의 끝부분이 물가로 달려들어 마치 엎드린 거북 모양으로 서려 있기 때문에 반구대라고 한다”

반구대 암각화가 하도 유명하다보니 암각화가 있는 바위절벽을 반구대로 착각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지만 엄연히 반구대는 반구대고, 암각화는 암각화일뿐 절대 혼동하면 안된다. 포은 정몽주가 반구대로 왔을 때만 해도 관리와 선비, 백성들은 암각화의 존재를 꿈에도 몰랐다. 이렇듯 우리나라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반구대만 높이 쳤을 뿐 반구대 암각화는 그냥 하나의 절벽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난 1971년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되면서 유명세는 역전됐다.

‘圃隱臺(포은대)’는 ‘포은 선생이 다녀갔던 돈대(평지보다 높직하게 두드러진 평평한 부분)’라는 뜻이다. 최종겸의 반구십영(盤龜十詠) 중에 ‘圃隱臺(포은대)’라는 한시가 있다. ‘玉泉仙洞(옥천선동)’은 ‘옥처럼 맑은 물이 샘솟는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반구십영 중에 ‘玉泉洞(옥천동)’이라는 한시가 있는데, 이는 옥천선동을 의미한 것으로 해석된다.

▲ ‘鶴巢臺(학소대)’ 글자

‘鶴巢臺(학소대)’는 반구대 절벽의 학 그림 위에 가로로 새겨져 있다. 학소대는 ‘학이 집을 짓고 사는 돈대’라는 의미가 있다. 오른쪽 옆에는 언양 현감(1800~1802)을 지낸 민수현의 이름이 동일한 필체로 세로로 새겨져 있다.

학소대에는 두마리의 학이 있다. 오른쪽 학은 오른쪽 날개를 접고 목을 길게 뻗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며, 왼쪽 학은 고개를 돌려 긴 부리로 깃을 고르고 있다. 두 그림 모두 다리 하나로 서 있다. 왼쪽 학 오른편에는 ‘운암 최신기’라는 작은 글자가 세로로 새겨져 있다. 최신기는 1713년(속종 39) 집청정을 지은 인물이다.

학 그림은 태화동 전원아파트 앞 만회정 아래 절벽에도 있었는데, 지난 1996년 명정천 확장공사 때 훼손돼 사라졌다. 조류학자 김성수씨가 갖고 있는 탁본을 비교해본 결과 반구대 절벽에 새겨져 있는 학 그림과 같은 원본인 것으로 확인됐다. 글=이재명 논설위원 jmlee@ksilbo.co.kr

드론촬영=최광호 참조:<반구대 선사마을 이야기>(반구대 선사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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