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는 태화강의 유장한 흐름을 30년 동안 좇아 왔다. 한 세대가 경상일보를 보며 인생을 가꾸어 왔고, 하루 하루 기사를 정독하면서 울산을 읽었고 세계를 읽었다. IMF라는 거대한 장벽에 한 동안 힘든 시기도 겪었지만 경상일보는 결코 굴종과 편파의 질곡에 빠지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작금의 언론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경상일보는 보다 나은 울산 미래를 위해 한발 한발 착실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울산은 지금 사면초가다. 고복격양을 구가하던 울산의 조선산업은 중간지주사를 서울에 두기로 함으로써 사실상 생산공장만 남을 예정이고, 현대자동차는 내연엔진이 없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조만간 근로자가 절반으로 줄어들 판이다. 중소·영세 상인들은 이미 점포를 비우고 길거리로 나앉을 태세고, 관광산업은 진척 없는 교착상태를 못 면하고 있다. 울산경제를 서둘러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오늘 아침 새삼 뼈아픈 반성을 한다.

언론 환경도 위기라고들 한다. 지역신문들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발빠른 대처도 어려운 실정이다. 본보도 모바일과 TV 등으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으나 수용자들의 눈높이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이 모든 것은 패러다임의 빠른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 때문이다. 오랫동안 안락하고 위험이 없는 사회가 판단력을 마비시켰던 것이다. ‘부자도시’라는 깊고 위험스러운 오만에 사로잡혀 울산은 미래를 보는 시력을 잃었다.

토머스 쿤은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paradigm)’의 전환은 혁명적으로 일어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 패러다임의 변화에는 조짐이라는 것이 있고, 그 조짐이 누적되면 혁명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소임을 다하게 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게 돼 있다.

울산은 4차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 서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면 울산은 자칫 ‘대한민국의 산업수도’가 아니라 국가경제의 지각을 흔드는 진앙지로 변할 수 있다. 최근 토론회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전기차가 등장하면 울산의 자동차 산업은 근로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협력업체는 도산하는 공동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안 그래도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차에 4차산업이라는 넘기 힘든 벽을 넘어서야 한다. 그렇다면 울산은 지금 어디로 가야 하나.

본보는 이 사면초가의 한 가운데서 장대한 깃발을 올리는 역사적인 임무를 스스로 부여받았다. 어느새 창간 30주년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굳건한 선봉자으로서 전면에 나설 것이다. 위기를 돌파하는 가장 최우선적인 방법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 인식의 힘은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뚫어내게 돼 있다.

30년 정론의 기치를 앞세워 온 경상일보는 신뢰와 균형, 그리고 공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울산을 위한, 시민들을 위한, 독자를 위한 지방 일간지로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갈 것이다. 흔히 말하듯이 세계화와 로컬리티는 동의어다. 지역적인 것일수록 세계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4차산업혁명의 역설적인 현실에서 그 동안의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혁신을 혁신하는 구조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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