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KTX 2단계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

▲ 21일 정홍건 천성산 화엄늪 주민감시원이 습지 내 순찰을 실시하고 있다. 습지 내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곳곳에 웅덩이가 형성돼 있다.

천성산 습지파괴 우려에
지율스님 100일 단식 등
불교계·환경단체 극한 반발
법정공방까지 이어지면서
개통시기 1년 이상 늦춰져
시공업체 145억 직접 손실
기존 계획대로 터널 설치
생태계에 큰 변화는 없어

천성산 도롱뇽 사건은 대규모 국책사업의 환경 적정성 문제를 불러온 상징적인 사건이다. KTX 개설 공사로 천성산 도롱뇽 서식지인 화엄늪이 사라질 수 있다며 지율 스님이 최장 100일에 달하는 단식을 벌이고 도롱뇽을 원고로 하는 소송까지 진행되면서 공사가 2차례 중단됐다. 직접 손실액은 많지 않았지만 개통이 1년 이상 지연되면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다. 반면 그동안 무분별한 개발 과정에서 등한시한 환경 훼손 문제를 공론화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을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도롱뇽 서식지 파괴 우려가 불러온 소송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은 2002년 6월 대구~부산 118.3km 구간을 잇는 KTX 2단계 공사를 시작해 2009년 개통할 예정이었다. 사업지에는 경남 양산시 천성산 원효터널이 포함됐는데 지율스님을 중심으로 불교계·환경단체가 반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지율스님 등은 13㎞에 달하는 터널이 수맥을 건드리면 습지보호지역인 천성산 화엄늪이 말라붙어 도롱뇽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며 사업을 반대했다.

2003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공사 중단 및 대안노선 검토를 추진했고 경주~부산 구간의 공사를 전면 중지했다. 2달 뒤 국무총리 산하 대안노선검토위는 기존 노선 유지를 결정해 노선이 재확정됐다.

같은 해 10월 지율스님 등은 도롱뇽과 비대위 관계자 11명으로 구성된 ‘도롱뇽 친구들’을 원고로 착공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도롱뇽은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며 각하 및 기각되자 2004년 6월 항고했다. 8월 청와대가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사 중단을 결정했고, 3달 뒤 항고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왔다.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은 11월 공사를 재개했고,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지율스님은 100일에 달하는 단식을 벌이며 노선 변경을 촉구했다.

2005년 8~11월 공사 중단 후 12월 천성산 발파공사가 재개됐다. 대법원은 2006년 6월 재항고를 기각했고 공사 재개가 최종 결정됐다. 2009년 2월 터널공사 관통식이 열렸고, 시험운행을 거쳐 2010년 11월 KTX 2단계 운행이 시작됐다.

2차례 총 6개월에 걸쳐 공사가 중단되면서 시공업체는 145억원의 직접 손실액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준공이 1년 이상 지연되면서 울산시민을 비롯해 KTX을 이용하는 국민들이 큰 불편을 겪으면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다.

◇화엄늪 생태계 큰 변화 없어

화엄늪은 천성산 화엄벌에 형성된 산지습지로 지정 면적이 12만4000㎡에 달한다. 천성산 제1봉을 중심으로 경남 양산시 하북면 방면으로 길게 뻗어 있다. 늪에 살던 식물들로 만들어진 진흑갈색의 퇴적물인 이탄층이 형성돼 있고 다양한 습지식물과 동물이 살고 있다.

21일 찾은 화엄늪은 습지라는 이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마른 곳만 골라 디뎠지만 이내 신발 속 양말이 축축해 질 정도로 습기가 넘쳐 있었고, 웅덩이마다 알에서 부화한 올챙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3~5월께 산란한다는 도롱뇽알은 이미 부화가 끝난 때문인지 발견하지 못했다.

정홍건 화엄늪 주민감시원은 발밑을 조심하라고 연신 경고했다. 정족산 무제치늪에 이어 화엄늪 관리를 맡고 있는 정 감시원은 “비가 오고 나면 물이 더 많이 흐르긴 하지만, 가물더라도 습지가 마르지는 않는다”며 “정상부 바로 아래인 해발 800m 대에서 습지가 생성되는 현상은 자연의 신비”라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산하 국립습지센터를 통해 5년마다 습지보호지역 정밀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보고서 상 2013년과 2018년 조사 당시 출현종에는 큰 차이가 없다. 터널 공사로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우려를 샀던 도롱뇽 역시 다수 분포하는 것이 확인됐다. 출현종은 2013년 519분류군에서 2018년 501분류군으로 소폭 줄었지만 멸종위기 야생생물 출현은 2분류군에서 5분류군으로 늘었다.

당시 조사에서는 국외반출 승인종이자 한반도 고유종인 산골조개가 서식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강우에 따른 수량 변동이 크고 강우 시기를 제외하면 거의 건조된 상태인 점을 감안하면 저서성 대형 무척추 동물이 서식하기에 매우 불리한 지역인 만큼 일정 수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2018년 조사에서 화엄늪 외곽은 습지 경계부를 중심으로 육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는 터널공사에 따른 현상이 아닌 습지 말단부에 형성된 소규모 계단형 단애지형의 확대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춘봉기자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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