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 디자인에도 조형의 원리가 적용된다. 색상, 형태, 질감을 장소에 맞게 적절히 운용하면 사계절 지루하지 않은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색상이 단연 시각적 효과가 크다. 하지만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은 원하는 것처럼 길지 않다. 꽃이 지고 나서도 매력적인 공간을 유지하려면 줄기와 잎의 색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정원에서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색이 끊임없이 다르게 인식된다. 시간의 역동성을 즐길 수 있는 이유다. 화가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빛이 가장 일정한 곳은 북향이다. 안타깝게도 북향에서 재배할 수 있는 식물은 제한
정원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지구정원사’가 잔잔한 울림을 준다.“지구가 하나의 정원이라고 말하는 순간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 정원사가 되는 것입니다.” 질 끌레망이 던진 이 말은 지구를 하나의 큰 정원으로 바라보고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치가 무엇인지 큰 화두를 던진다. 인위적으로 꾸며진 공간이라는 틀에 갇힌 생각을 벗어나 식물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자연 그 자체의 모습을 정원이라는 공간에 담아내고자 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정원조성에 중요한 것은 화려한 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한다.자연주의 정
봄인가 보다. 매화 꽃망울 사진을 여기저기서 보내온다. 꿈쩍도 않을 거 같던 땅이 들썩이며 분주해지니 꽃맞이를 하러 나가봐야 할 때다.울산 중구에는 올해로 두 번째 봄을 맞는 태화연 정원이 있다. 혁신도시와 인접해 있는 생활밀착형 숲 정원이다. 오토캠핑장으로 잘 알려진 곳에 정원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아기자기한 꽃이 사계절 피고 지는 중구의 대표 정원이 되었다. 종갓집 중구에 걸맞게 기존 정자와 연못을 활용하여 전통적인 요소를 담았다.태화연화(花)라는 주제로 크게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입구 맞이마당은 연꽃잎을 상징하는 휴게공
정원을 만드는 현장을 가면 항상 겪는 즐거운 경험이 있다. 한참 꽃을 심고 있으면 도심 한복판인데도 어디선가 나비들이 날아온다. 이렇게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를 심는 일은 여러 생명과의 공생을 위한 작은 실천이다.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 정원을 만들 때 사람뿐만 아니라 곤충과 야생동물의 서식처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거창 창포원(사진)은 경상남도 지방정원 1호로 지정된 수변 생태공원으로, 수달, 새매, 큰고니 등 천연기념물 및 멸종위기 생물과 250여 종의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한다. 종 다양
사진 몇 컷만 머릿속에 담고 찾았던 ‘라 콜리나’는 필자에게 기대 이상의 공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나는 풍경은 다시 일상 속으로 떠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후지모리 테루노부가 디자인한 ‘라 콜리나’는 2015년 제과 공장으로 태어났다. 라 콜리나는 이탈리아어로 언덕을 의미하며, 무성한 풀과 잔디로 덮여 있는 언덕 같은 지붕은 건축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숲이 우거진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호 가까이 있으며, 일본의 중요 전통 건물군 보존지구로 선정된 옛 거리가 남아있는 시가현 오우미하치
애써 가꾼 정원의 꽃과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주지 않으면 애가 탄다. 현장을 조사하고 설계를 하고 정원을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신경을 써서 고르고 고른 나무가 잘 자라주면 더없이 감사한 일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세가 약해지면서 난감한 상황도 생긴다. 죽은 나무를 제거하고 다시 심는 것을 반복하기 전에 원인을 먼저 분석해 보아야 한다.경기도 광주 퇴촌면에 있는 세븐시즌스(seven seasons)가든(사진)은 정원주의 열정이 가득 담긴 정원이다. 새롭게 정원을 만들었다는 소식에 늘 찾아가 보고 싶은 정
‘땅이 원하는 것에 경청하고 이를 찾아내야 한다.’독일의 조경가 헤르타 함머바허 여사가 ‘장소의 혼’을 언급하며 했던 말이다.오래된 공원은 별다른 매력 없이 큰 나무 아래 잔디밭이라는 일반적인 공식의 풍경을 만든다.울산도 도시화 초기 조성된 공원이 많다. 지금은 새롭게 조성하기보다 기존 공원을 리뉴얼하는 추세다. 이용행태나 상권 등 주변 여건을 반영해 열어주어야 할지 감싸주어야 할지 결정한다. 대부분 나무는 울창해지고 잔디밭은 잡초관리에 고심이 많고 하부 식생은 빈약한 상태다. 대안이 없을까?독일 남서부 루드비히스하펜에는 ‘녹색 오
세계 3대 정원박람회가 있다. 영국 첼시 플라워쇼, 프랑스 쇼몽 국제 가든 페스티발, 독일 BUGA(연방정원박람회)다. 특히 독일 BUGA의 경우는 매회 개최 장소를 달리해 박람회 전 후 도시의 면모를 탈바꿈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올해는 독일 남서부 만하임(Mannheim)에서 4월부터 10월까지 개최 중이다. 약 100㏊가 넘는 면적에 새로 조성된 슈피넬리 기후파크와 전통적인 루이젠파크에서 동시에 개최되며 네카강을 가로질러 두 장소는 케이블카로 서로 연결된다.1948년 미군 부대로 사용하던 만하임 북동쪽 슈피넬리(Spinell
고정희 박사님의 식물적용학 수강생들과 함께 ‘장소의 혼’이라는 주제로 독일 정원을 답사 중이다. 첫날 베를린 인근 포츠담에 위치한 칼푀르스터 정원을 들렀다. 숙근초 정원의 선구자인 독일의 정원가 칼 푀르스터는 한 해를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 이렇게 일곱 계절로 구분했다. 자연 서식처를 참고해서 기본 구조를 잡고 황금률에 따라 숙근초들을 배치했다. 100년이 지나도록 아름다움을 간직한 정원은 숙근초에 대한 그의 철학이 느껴지는 곳이었다.정원은 크게 6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선큰가든, 봄길, 자연정원,
인간의 마음 상태는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 이 세 가지 신경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다. 도파민은 자극적인 기쁨이나 쾌감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노르아드레날린은 불안, 부정적 마음, 스트레스 반응을 관장하며 세로토닌은 이 두 가지 신경을 억제하고 너무 흥분하지도 않고 불안한 감정도 갖지 못하게 평온함을 주는 신경 물질이다. 일상에서 지속적인 행복감을 느끼는 데는 세로토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포항 보경사 근처에 위치한 기청산식물원(사진)은 형형색색의 화려함보다 자연 그대로의 식물 탐방에
순천에서는 10년 만에 두 번째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개장 전인 3월 독일 정원 리뉴얼 공사에 고정희 박사님이 직접 오셔서 식재 감독을 하실 때 식재 봉사차 방문을 했다. 뉴 저먼스타일(New German Style) 식재 방식인 숙근초 믹스로 설계가 되었다. 핵심은 돌이 많은 토양 표면 위에 리드미컬하게 반복적으로 식물을 심는 것이다. 왕마사로 멀칭을 미리 한 후에 식물을 심는 시도가 흥미롭기도 하고 시도해 보고 싶다고 느꼈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흔히 보는 풀밭으로 보일 법도 하다. 그만큼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뜻
피트 아우돌프가 태화강 국가정원 자연주의 정원을 점검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제주 식생 탐방에 동행했는데, 곶자왈 안내를 맡은 더 가든의 김봉찬 대표는 정원을 어디서 배웠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자연에서 배웠습니다”.“나도 자연에서 배웠습니다”. 자연주의 정원의 두 대가는 자연이라는 공감대로 환상적인 케미를 보여주었다. 숲으로 들어가자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보고 궁금해하는 모습이 그치질 않았다. 이날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식물 이름만 해도 열거하기가 힘들다.‘배움이란 어쩌면 지식을 쌓아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올해 벚꽃이 유난히 일찍 피고 졌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단순히 ‘꽃이 빨리 피고 졌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꿀벌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기후변화가 초래한 생태계 교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식물의 수분에 차질이 생기면서 종국에는 인간의 삶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현재 전 세계적으로는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로 인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어, 녹지 조경 정원의 정책 방향도 궁극적으로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추세이다. 이제 정원은 단순히 꽃과 나무를 심는 장소가 아니라
영화관에서 대형스크린으로 본 ‘아바타: 물의 길’은 기대 이상의 영상적 몰입감으로 신비한 바다 생태계를 체험하게 했다. 1편이 열대우림을 배경으로 한 숲 생태계 중심이었다면 2편에서는 해양 생태계에 대한 감독의 고민이 담겨있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둘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며, 자연과 생명체들의 상호 연결과 공존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영화의 주제는 최근 대두되는 해양정원의 목적과 맞닿아있다. 해양정원은 ‘해양생물, 해양 생태계, 해양 경관적 가치뿐만 아니라 해양 인문이나 해양 문화가 우수해 보전할 가치가 있는 연안
이 겨울 제주 여행 중이라면, 폭설이나 한파 소식에 좌절하지 말고 실내 전시관을 찾아보자. 제주 성산에 위치한 ‘빛의 벙커’(사진). 대가의 명작에 클래식 명곡을 함께 들으며 몰입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빛의 벙커는 한때 군사 통신시설인 지하 비밀 벙커를 개조한 전시 공간이다. 기능을 상실한 산업시설을 예술공간으로 되살리는 문화재생공간이다.전시장 입구 육중한 철문은 앞으로 보게 될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실내는 스크린을 대신하는 콘크리트 벽면과 기둥이 전부다. 빛으로 재해석한 그림이 벽과 기둥을 뒤덮으며 강렬한 음악이
콘셉트가 뭔가요? 요즘 모든 분야에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정원도 마찬가지다.지난주 제주 답사를 다녀왔다. 겨울 제주는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가는 날이 맑았던 터라 야외 일정부터 소화하기로 하고 들른 곳은 제주 스누피가든이다. 피너츠 원작 만화의 주인공 스누피를 콘셉트로 스토리텔링에 성공한 정원이다.지역마다 유명한 수목원이 있지만 스누피가든의 차별화된 전략이 있다. 전체 수목원을 피너츠 원작과 찰스 슐츠의 철학, 등장인물 등의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실내 가든하우스와 야외 가든으로 동선을 구성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계절. 정원 조성 현장마다 막바지 식재 작업이 한창이다. 아직은 이른 아침 이슬이 촉촉하다. 갓 심은 식재지에 나무껍질을 덮어준다. 이를 멀칭이라고 하는데, 극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뿌리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노출된 맨 땅은 추위에 취약하다. 비라도 오면 땅에 물웅덩이가 생기거나 토양 속 영양분이 씻겨 내려가 버린다. 멀칭은 토양의 기존 상태를 유지 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에 추운 겨울이 오기 전 가을에 하는 게 좋다. 토양이 얼어 있는 겨울이나 이른 봄, 뜨겁고 건조한 여름에는 피하
한바탕 축제의 장이 펼쳐진 10월의 국가정원. 긴 시간 바라던 꿈의 정원 ‘후스아우돌프울산가든’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 정원사 그룹과 조성 초기부터 관심을 가지고 준비해온 국내 식재 리더들의 헌신적인 참여를 지켜본 외국 식재 감독들은 하나같이 Amazing Korea(어메이징 코리아)라고 표현했다.매일 아침 봉사활동을 시작할 때 외친 구호가 ‘정원은 축제다!’이다. 일반 자원봉사자들로 서울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예비부부, 소식을 듣고 달려온 대구시민, 아이의 손을 잡고 참여한 부모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뜻깊은 축제의 현장을 즐겼
소쇄원(사진) 48영의 시적 분위기를 상상하여 그린 ‘소쇄원도’를 보았다면 직선으로 면을 분할한 기하학적 평면구성에 사뭇 놀랄 것이다. 실제로 정원에서 느끼는 감흥은 자연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듯하여 인위적인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담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주변의 원림과 구분되어 방처럼 아늑함을 주고 높낮이를 달리한 정자와 외나무다리가 걸쳐진 깊고 좁은 개울 등이 공간에 깊이감을 더해준다.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소쇄원은 500년을 그러하듯 초록의 대나무 길을 따라 올라가면 깊은 초록의 점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더 이상 걷어낼 게 없을 때까지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세상에 관한 모든 지식은 관찰로 시작한다. 몸으로 느끼는 것을 이미지로 만들어 떠올리는 능력이 ‘형상화’다. 현실에서 출발하되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고 사물의 본질과 핵심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다. 언어와 음악, 자연 등 어떠한 분야든 반복되는 패턴을 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첫걸음이다.눈으로 볼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