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갖고 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각종 재벌정책을 수립하는 일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의 권한이다. 물론 발표 시기라든지, 정책시행 시점을 경제 상황을 보아가며 조절할 필요는 있을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재벌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은 정권의 몫이라는 얘기다.

 반면 재계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관련 정책을 놓고 정권을 상대로 타협하거나 때로는 부딪혀가며 정책 방향을 수정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일 등은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의 이익단체가 할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수위와 재계가 최근 빚고 있는 갈등은 일면 당연한 일이라고 보아 넘길 수도 있다. 다만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고 대립의 양상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감정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의 재벌에 대한 시각은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그리고 그런 시각은 사실상 이 정권 출범 이후 내내 있어온 것이기도 하다. 인수위 관계자 몇 몇이 차기 정부의 재벌정책 방향에 대해 언급했다고 해서 재계가 새삼 크게 위기감을 느끼거나 거세게 저항할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전략적인 측면을 떠나서 순수하게 정책적인 면만 놓고 볼 때도 지금은 새 정권이나 재계가 대립각을 세울만큼 뚜렷한 이슈나 돌발사태가 발생한 시점도 아니다. ‘재벌과 대기업 간의 구분 계획’이라든지 ‘구조조정본부 폐지 유도’ 같은 것도 현 정권의 비서실 폐지나 총액출자 제한 등의 재벌 정책과 거의 맥락을 같이하는 것일 뿐이다. 한마디로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놓고 인수위와 재계가 말싸움을 하는 셈이다. 재계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 받을만 하고, 인수위도 나라 살림을 꾸려갈 준비를 하는 측으로서 대범하지 못한 측면을 비판 받아 마땅하다.

 정권과 국민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앞으로도 한참 동안 이 나라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은 재벌 또는 대기업들이 맡게 돼 있다. 그게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그래서 재벌 개혁의 당위성에 공감하면서도 속도 조절론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들의 모임일 뿐인 전경련의 정상적인 운영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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