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중의, 한시를 통한 세상 엿보기(256)

▲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요즘은 거의 눈에 띄지도 않지만 필자가 어릴 때는 농촌에 木花(목화)를 재배하는 곳이 많았다. 목화는 꽃이 두 번 핀다고 할 수 있으니 그 첫째 꽃은 노랗거나 하얀 빛깔로 피는 생물학적인 개화이고, 둘째 꽃은 다래가 익은 뒤에 열매 가득히 흰 솜이 터져서 밭을 온통 하얗게 만드는 木綿(목면)의 개화이다. 다래는 섬유질이 여물기 전에는 달짝지근한 맛을 지니고 있다. 어릴 때 따 먹은 기억이 있는 필자는 印度(인도) 여행길에 그곳의 다래를 따서 먹어보고 엄청난 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맛은 한가지라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이제는 목화가 주변의 공원이나 화단에 화초 대신 심는 花木(화목)처럼 되고 말았지만 화학섬유가 나오기 이전에는 서민의 겨울옷과 이불에 필요한 솜을 공급하던 작물이었다. 野史(야사)에 의하면 英祖(영조)의 繼妃(계비) 貞純王后(정순왕후)는 揀擇(간택) 과정에서, 세상에서 가장 넘기 어려운 고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보릿고개’라고 답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목화 꽃’이라고 하여 왕비로 뽑히게 되었다고 한다.

靑裙女出木花田(청군녀출목화전)

푸른 치마를 입은 여인이 목화밭에서 나오는데

見客回身立路邊(견객회신립로변)

나그네를 보고는 몸을 돌려 길가에 서네.

白犬遠隨黃犬去(백견원수황견거)

흰 개가 누른 개를 멀리 따라가더니

雙還更走主人前(쌍환경주주인전)

짝을 지어 돌아오다가 또 주인 앞으로 달려가네.

이 시는 조선 후기 문신 申光洙(신광수·1712~1775)의 ‘峽口所見(협구소견, 골짜기 입구에서 본 것)’이다. 푸른 치마 차림의 여인이 목화밭에서 나오다가, 낯선 남정네를 보고는 급히 몸을 돌리고 길가에 서서 나그네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內外(내외)하는 순박한 풍속을 보여주고 있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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