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중의, 한시를 통한 세상 엿보기 (260)

 

장마와 무더위가 공존하는 요즘 같은 날씨에는 주위 사람에 대한 配慮心(배려심)이 요구된다. 기온과 습도의 高度化(고도화)에 따른 不快指數(불쾌지수)의 상승은 자칫하면 타인의 감정을 다치기 쉽다. 不快感(불쾌감)의 치유에는 웃음이 特效藥(특효약)이다. 한시는 우스운 정황을 담는 데는 매우 인색한 樣式(양식)이지만 가끔 그런 모습을 담아내기도 한다.

文章闊發多勞苦(문장활발다노고): 문장이 활발하면 수고로움이 많고
射御材能戰死亡(사어재능전사망): 활쏘기와 말 타는 재주는 전쟁에서 죽네.
池下有田逢水損(지하유전봉수손): 못 아래 밭이 있으면 홍수를 만나 손해 보니
石囊踰首我心當(석낭유수아심당): 돌 주머니를 머리 위로 넘기는 이가 내 마음에 맞네.

이 시는 조선 전기의 문신 成俔(성현, 1439~1504)이 편찬한 󰡔慵齋叢話(용재총화)󰡕에 수록된 작품으로 출가를 앞둔 어느 처녀가 중매쟁이의 말을 듣고서 자기 생각을 밝힌 것이다. 중매쟁이가 소개한 총각들 중에는 文章(문장)에 능한 사람, 활쏘기와 말 타기에 능한 사람, 못 아래 좋은 땅 수십 頃(경)이 있는 사람, 陽道(양도)가 강하여 돌 주머니를 걸면 머리 뒤로 넘기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그 말을 들은 처녀는 이 시를 지어 자기 의사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처녀는 事理(사리)에 밝을 뿐 아니라 주관이 매우 뚜렷한 閨秀(규수)라고 할 만하다. 부모가 정해주는 配匹(배필)과 혼인하여 一夫從事(일부종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던 시대에 예사롭게 보기는 어려운 경우라고 하겠다.
요즘에는 결혼하기 전에 건강검진 보고서를 당사자 간에 교환하는 것이 드물지 않다고 한다. 혼례 이전에는 얼굴조차 보지 못한 경우가 非一非再(비일비재)하던 시대에 文武(문무)의 재능이나 재물보다 건강 및 精力(정력)을 결혼의 첫째 조건으로 선택한 그 용기가 가상하게 느껴진다. 오늘날의 미혼여성에게 위의 네 후보 중에서 한 사람을 고르게 하면 그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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