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중의, 한시를 통한 세상 엿보기(266)

▲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요즘 언론 매체에는 정치인의 말로 인한 口舌(구설)이 한창이다. 조선의 승려 四溟堂(사명당) 惟政(유정·1544~1610)과 한 시대의 풍운아 許筠(허균·1569~1618)은 평소에 친분이 매우 각별하였다. 18살 때 둘째형 許篈(허봉)의 소개로 유정을 만난 허균은 스님이 入寂(입적)한 뒤 문집의 서문과 碑文(비문)을 쓸 정도의 忘形之交(망형지교)를 맺었다.

허균은 出仕(출사)하기 전에 이미 사림파의 거두 金宗直(김종직)을 비판하는 논설을 쓰는가 하면 기존의 규범을 따르지 않고 나름의 奔放(분방)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관직에 나가서 거듭 파직을 당하면서도 主觀(주관)에 따른 소신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1606년 三陟府使(삼척부사)로 나갔다가 불교를 신봉한다는 명목으로 13일 만에 파직당한 소식을 듣고 쓴 ‘聞罷官作(문파관작, 파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짓다)’에서 “禮儀(예의)의 교화가 어찌 호방함을 구속하랴? 뜨고 가라앉음을 다만 뜻에 맡기네. 그대는 그대의 법을 쓰고, 나는 스스로 나의 삶을 이루리라.(禮敎寧拘放 浮沈只任情 君須用君法 吾自達吾生)”라고 하여 기존의 규범과 질서를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하였다.

休說人之短與長(휴설인지단여장)

다른 사람의 단점과 장점을 말하지 말게나.

非徒無益又招殃(비도무익우초앙)

이익이 없을뿐더러 또 재앙을 부른다네.

若能守口如甁去(약능수구여병거)

입을 병마개 막듯이 해서 나아갈 수 있다면

此是安身第一方(차시안신제일방)

이것이 몸을 편안하게 하는 첫째 방안이라네.

이 시는 유정의 ‘贈許生(증허생, 허생에게 주다)’으로서, 허균의 경박한 입을 경계하고 있다. 형이 아우에게 들려주듯이 親近(친근)한 어조로 말조심하여 입을 다물 것을 당부하고 있다. 마개로 병을 막듯이 굳게 입을 닫고 있으면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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