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중의, 한시를 통한 세상 엿보기 (268)

▲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무더운 여름에는 무슨 일엔가 빠져서 더위를 잊는 것도 나쁘지 않다. 취미활동도 좋고 독서도 괜찮다. 요즘 청소년들은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주위 분들의 걱정을 듣는 일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孔子(공자)도 “종일 배불리 먹고 마음 쓰는 데가 없으면 참으로 곤란하지 않느냐? 바둑이 있지 않느냐?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였듯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는 무엇인가를 하는 게 낫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에 몰입하는 정도의 偏差(편차)이다. 밤낮없이 게임과 雜技(잡기)에 빠져서 정작 해야 할 일을 잊고 사는 경우도 있으니, 이른바 게임 廢人(폐인)이 그것이다.

家焚不識是何也(가분불식시하야)

집이 불타는 것도 모르고 “무슨 불?” 하고

父死猶知可惜乎(부사유지가석호)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도 오히려 “애석하네.”라 하네.

萬事無心論指馬(만사무심논지마)

온갖 일에 무심하되 行馬(행마)만 따지고

一生有興屬梟盧(일생유흥속효노)

(梟盧: 樗蒲 놀이의 숫자 이름, 梟는 1이고 盧는 6, 내기, 끗발)

평생에 흥미가 있되 끗발에만 부치네.

이 시는 徐居正(서거정)의 <太平閑話滑稽傳(태평한화골계전)>에 실린 작품으로 바둑에 빠져서 다른 일에는 도대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바둑 마니아(mania)의 지나친 언행을 諷諫(풍간)한 작품의 前半部(전반부)이다. 어떤 사람이 한창 이웃집에서 바둑에 빠져 있을 때 자기집의 下女(하녀)가 달려와서 자기 집에 불이 났다고 하니 느긋하게 “무슨 불?”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바둑을 두다가 고향에서 온 奴僕(노복)으로부터 부친상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계속 바둑알을 놓으려고 하면서 “아버지의 상이 났어? 애석하구먼.” 하였다는 일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어떤 일에서건 과도한 執着(집착)이 문제이다. 일을 진행하는 緩急(완급)과 肥瘠(비척)의 조절이 쉽지 않다. 무슨 일이든지 간에 자발적으로 적절히 정도를 조정하는 지혜가 요청된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